장기체류 신청 외국인에 ‘혈연 입증 의무화’ 법안
“서류위조 막으려” “외국인 혐오 조장” 찬반 대립
“서류위조 막으려” “외국인 혐오 조장” 찬반 대립
프랑스 의회가 20일 이민 신청자에 대한 검증절차를 강화하기 위해 디엔에이(DNA) 검사를 도입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날 91 대 45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한 법안을 보면, 프랑스에 거주하는 가족과 살기 위해 장기체류 비자를 신청한 외국인은 혈연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디엔에이 검사 결과를 제출할 수 있게 된다. 내용은 자발적 제출이지만, 당국이 제출을 요구하면 비자 신청자가 거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어서 사실상 강제성을 띠게 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디엔에이 검사는 2년 동안 시범적으로 운용된다. 우파 성향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이민법 강화를 공약했다. 이번 법안은 그 공약의 이행인 셈이다.
법안 찬성론자들은 디엔에이 검사가 가족관계를 입증하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민 신청자의 서류 위조를 막아 범죄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아드리앵 구테롱 의원은 “토고·세네갈 등 아프리카 서부 해안 국가 출신들의 혼인증명서나 출생증명서는 절반 이상이 위조”라고 주장했다.
좌파 계열 의원들은 반대했다. 뇔 마메르 의원은 “프랑스 법은 혼외관계로 얻은 자식이나 양자를 친자와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한다”며 “이 법은 프랑스 법 전통과 양심에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생명윤리학자인 악셀 칸은 “가족의 범위를 핏줄로만 제한하는 악법”이라며 “이는 인간 가족이 아닌 동물 가족”이라고 혹평했다.
사회당 출신이지만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무장관 등 일부 각료도 반대했다. 무슬림 인권운동가 출신의 파델라 아마라 도시정책담당 정무장관은 “이 법이 프랑스에 오고자 하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증을 조장한다는 점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사르코지 대통령은 “디엔에이 검사는 자발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법안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날 통과된 법안은 이민 신청자의 프랑스어 구사능력과 월 수입 증명 등의 확인도 의무화했다. 또 프랑스 당국이 주민의 인종적 배경과 관련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도 허용했다. 프랑스는 오랜 동안 개인의 종족과 인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하는 평등법을 유지해 왔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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