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조기총선설에 다시 불을 지폈다.
23일부터 29일까지 잉글랜드 남부 본머스에서 열리는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브라운 총리는 이미 차기 총선을 염두에 둔 듯 좌파 성향 노동당 지지계층뿐만 아니라 야당 보수당의 우파 유권자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폭넓은 정책 청사진을 제시했다.
브라운 총리는 24일 전당대회 연설에서 국민이 질 높은 무료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공공서비스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30만명의 어린이가 일대일 영어 교육과 수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60만명의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영국인들이 정기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전임 블레어 총리의 과장된 스타일과는 달리 매우 침착한 어조로 브라운 총리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우리 학교와 병원을 위해 일하고, 강력한 영국을 위해 일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신문은 브라운 총리가 보수당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영국'이라는 단어를 무려 80회나 쓰고 일자리, 가족, 안전 같은 보수당이 선호하는 단어들을 구사해 노동당의 지평을 중도 우파까지 넓혔다고 논평했다.
그는 평소 노동당 전당대회와 달리 보수당을 언급하거나 공격하지 않았고, 일개 당수가 아닌 총리로서 국정을 자신감 있게 이끌어 간다는 인상을 주는 데 연설의 초점을 맞췄다.
브라운 총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알-카에다가 숨을 장소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고 말했으나 이슬람 전사에 맞서기 위해서는 군사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브라운 총리는 차기 총선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의 연설은 모든 연령층과 계층,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선거 공약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고 로이터 통신은 지적했다.
브라운 총리는 노동당원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연설 시작과 끝에서 당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보건부 차관을 맡고 있는 앤 킨 노동당 의원은 "나라가 듣기를 원하는 연설이었다"며 "토니 블레어가 훌륭한 연설자였다면, 고든은 우리가 왜 노동당에 합류했는지 노동당의 영혼에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약속하는 너무나 포괄적인 연설"이라며 "그는 이 엄청난 일들을 어떻게 할 지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브라운 총리 취임 후 노동당의 지지율이 몇 개월째 보수당을 앞서는 상황에서 나온 이 같은 연설에 고무된 노동당원들은 재집권을 위해 10월이나 11월 조기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24일 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이 발표한 최신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은 지도력과 정책을 둘러싸고 내분을 빚고 있는 보수당보다 지지율이 8% 포인트 앞섰다.
전당대회를 맞아 뜨겁게 달아오르는 조기총선설에도 불구하고 브라운 총리 보좌관들은 빨라야 내년 봄에나 조기총선이 실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브라운 총리는 2010년 봄까지는 총선을 실시할 필요가 없고 그 때까지는 총리로 재임할 수 있다.
조기 총선을 소집할 경우 총선에서 승리하면 노동당이 향후 4년간 재집권하는 기반을 마련하지만 패배하면 단명 총리로 물러나야 한다.
김진형 특파원 kjh@yna.co.kr (런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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