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베를린 하케셔마크트에 있는 옛 유대인 지역이 통일 이후 새로운 문화·상업 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디자이너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완전하게 변모시킨 풍경.
[권태선 편집인 현지 취재] 독일 통일 17돌
3일로 독일은 통일 17주년을 맞는다. 97년 통일 7주년을 맞은 독일을 현지 취재했던 권태선 편집인이 독일 정부의 초청으로 그 후 10년 동안의 변화를 살펴봤다.
“독일 통일은 정말 예상 못할 놀라운 사태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교육이나 의료·보육제도 등 동독의 모든 제도를 버린 것은 큰 잘못이었다. 이제서야 교육·의료·보육 분야 등에서 옛 동독 제도의 일부가 복원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양쪽이 느리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베 바르트 독일 자민당 의원의 말처럼 통일 당시 전면적으로 부정됐던 동독이 부분적으로 복권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보육과 교육 부분이다. 프리데리케 헬너 독일 외무부 문화홍보국장은 서독 출신이지만 동베를린에 산다. 어린 아이 둘을 기르는 그로서는 보육시설이 더 잘 돼 있는 동베를린 쪽이 편하기 때문이다.
육아·교육 등서 ‘동쪽’ 장점 살리기 잇따라
심각한 경제격차 해소가 사회통합 ‘열쇠’ 독일에선 3살 이하 어린이의 13.5%만 유아원에 맡겨진다. 유럽연합 평균인 35%보다 턱없이 낮은 이 비율도 보육을 사회적 책임으로 여겼던 동독 지역 덕이고 육아를 가정의 책임으로 여겨온 서독 지역은 그 비율이 8%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 정부는 지난 5월 현재 25만개인 유아원의 수를 2013년까지 75만개로 늘려 3살 이하 어린이의 35%를 책임지기로 했다. 유럽 나라 중 최저 수준인 출산률(1.3)을 높이고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확대하려면 옛 동독처럼 보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 교육부의 직업교육 촉진 프로그램 담당자인 우베 벤트럽은 최근 피사 평가에서 독일의 교육 수준이 최하위권에 처지는 결과가 나오자 동독의 취학전 조기교육과 국가가 통합 관리하는 교육 방식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통일후 옛 동독 교육제도를 철저히 지워버렸던 브란덴부르크주에서도 최근 들어 옛 동독 교육방식이 일부 복원되고 있다고 포츠담의 한 중학교 생물·지리 교사인 페트라 쉐퍼는 전했다. 사회화 교육이 재도입되고 일찍부터 직업교육과 일반교육을 구분하는 서독식 제도보다 10학년까지 단일학제로 운영되던 동독 방식이 낮은 계층의 고등교육 접근 기회를 늘릴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되고 있다고 한다.
정치 지형 역시 변하고 있다. 옛 동독 지역의 지역정당으로 간주되던 민사당이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우 편향 정책에 반발한 사민당 탈당그룹과 노동조합 등 서독쪽 세력과 선거연합을 통해 2005년 선거에서 전국 8.7%의 득표로 53석을 얻었다. 이 그룹이 올 6월 좌익당으로 재편돼 원내 제4당이 됐다. 좌익당 출신 연방의회 부의장 페트라 파우는 “우리는 비로소 세계화 과정에서 고통을 받는 전체 독일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통일 과정을 기록물로 만들어 유명해진 동독 출신 저술가 크리스토퍼 링크스는 “서독은 다른 서유럽 국가와 달리 진짜 좌파정당은 없었다. 통일된 지금 전 독일을 대상으로 하는 좌파 정당의 출현은 자연스런 현상이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해야겠다고 느끼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좌익당이 앞으로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동서독인 사이의 심리적 장벽을 현저하게 낮췄다고 말하긴 아직 이르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89년 동독의 시민운동 단체인 ’지금 민주주의를’의 일원으로 통일 과정에 참여했고 지금은 녹색당 출신 의원인 코넬리아 벰은 “89년 당시 우리는 동독이 통일독일에 큰 영향을 끼쳐, 시민들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좀더 생태적인 나라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로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서독인들은 동독에 돈을 퍼붓느라 서독의 인프라 건설이 제대로 안 된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동독인들은 2류국민이 됐다고 자조한다”고 말한다.
링크스는 그러나 동서독 사이의 심리적 장벽은 장소와 세대에 따라 다르다고 지적한다. “베를린과 옛 동독의 서쪽지역 주민들은 서독지역에서 일자리를 찾는 등 서로 섞여가고 있지만 실업률이 20%가 넘는 폴란드 접경지역 등에선 통일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또 새로운 기회가 부여된 젊은 세대는 나이든 세대에 비해 심리적 장벽이 적다. 그러나 중소도시나 시골의 경우는 새로운 문화에 접근하기 힘들어 같은 세대라도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직 갈길이 멀다.”
마음의 장벽을 낮추려면 무엇보다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게 급선무다. 독일 건교부는 지난 19일 “2019년까지 옛 동서독의 경제격차를 없애겠다는 목표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고 선언했다. 2006년 옛 동독 지역 경제성장률이 3%를 기록하면서, 독일 통일 직후의 ‘통일 효과’를 맛보았던 9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3%는 옛 동독권을 제외한 채 이루어졌던 1999년과 2000년의 성장과 달리 지금은 독일 전체가 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줘 의미가 크다(서독 지역은 2.6% 성장). 그렇지만 아직도 동독 지역 임금이 서독의 70% 수준이고 실업률도 14.7%로 2배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2019년까지 격차를 없애겠다는 목표 달성은 그리 녹록해보이진 않는다.
독일이 이렇게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 데는 동독의 모든 산업을 파괴해버린 통일 후 경제정책이 있다고 링크스는 지적한다. “90년 마르크화의 등가교환으로 동독기업은 하루아침에 그들 제품의 30% 이상을 수용하던 동유럽시장을 잃었고 독일 내부시장도 서독기업에 빼앗겼다. 지나치게 빠른 화폐교환이 재앙을 가져왔다.”
때문에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서로 다른 체제를 통합할 때 양쪽의 유산을 평가해 수용하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독일은 그렇지 못해서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까지 지불했다”는 벤트럽의 의견에 머리를 끄덕였다.
베를린 예나/글·사진 kwonts@hani.co.kr
심각한 경제격차 해소가 사회통합 ‘열쇠’ 독일에선 3살 이하 어린이의 13.5%만 유아원에 맡겨진다. 유럽연합 평균인 35%보다 턱없이 낮은 이 비율도 보육을 사회적 책임으로 여겼던 동독 지역 덕이고 육아를 가정의 책임으로 여겨온 서독 지역은 그 비율이 8%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 정부는 지난 5월 현재 25만개인 유아원의 수를 2013년까지 75만개로 늘려 3살 이하 어린이의 35%를 책임지기로 했다. 유럽 나라 중 최저 수준인 출산률(1.3)을 높이고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확대하려면 옛 동독처럼 보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 교육부의 직업교육 촉진 프로그램 담당자인 우베 벤트럽은 최근 피사 평가에서 독일의 교육 수준이 최하위권에 처지는 결과가 나오자 동독의 취학전 조기교육과 국가가 통합 관리하는 교육 방식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통일후 옛 동독 교육제도를 철저히 지워버렸던 브란덴부르크주에서도 최근 들어 옛 동독 교육방식이 일부 복원되고 있다고 포츠담의 한 중학교 생물·지리 교사인 페트라 쉐퍼는 전했다. 사회화 교육이 재도입되고 일찍부터 직업교육과 일반교육을 구분하는 서독식 제도보다 10학년까지 단일학제로 운영되던 동독 방식이 낮은 계층의 고등교육 접근 기회를 늘릴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되고 있다고 한다.
보전지역으로 지정돼 동독 당시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의 풍경이 대조적으로 보인다.
[권태선 편집인 현지 취재] 독일 통일 17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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