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속보이는 이민정책
숙련자엔 ‘블루카드’ 원스톱 이민…저출산·고령화 대책
비숙련 노동자엔 ‘DNA 검사’ 요구 인권침해 논란 불러
비숙련 노동자엔 ‘DNA 검사’ 요구 인권침해 논란 불러
의사, 간호사, 기술자 등 전문직 또는 숙련노동자는 앞으로 파리, 베를린, 로마로 이민가기 쉬워진다.
유럽연합(EU)이 이민절차 등을 대폭 간소화한 ‘블루 카드’ 원스톱 비자 프로그램을 23일 공식 제안하고 숙련노동자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이들 노동자는 이 프로그램으로 우선 2년간의 체류기간을 보장받고, 장기체류 허가도 더 빨리 받을 수 있게 된다.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직장을 옮길 수도 있고, 회원국 국민과 비슷한 수준의 사회보장이나 노동조건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관련 분야 증서와 3년의 경력이 있으면 된다. 미국의 ‘그린카드’(영주권) 제도를 본뜬 이 제도 도입으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빼앗기는 아시아, 중남미 등의 전문인력을 끌어온다는 게 유럽연합의 구상이다. 현재 숙련노동자의 50%가 미국으로 이민가고, 5%만이 유럽으로 이민간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23일 전했다.
이번 제안은 유럽연합의 심각한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 대책으로 나왔다. 유럽연합은 2050년까지 노동계층이 5천만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에서 비유럽연합 출신 이민자 가운데 전문직 또는 숙련노동자의 비율은 0.9%로, 오스트레일리아 9.9%, 캐나다 7.3%, 미국 3.5%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일부 회원국에서 실업률이 10%를 웃돌지만, 또다른 한편에서는 심각한 숙련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다.
유럽연합은 꾸준히 전문인력이 유입돼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유럽연합은 사회와 경제가 스스로 굴러갈 정도로 젊지도 인구가 많지도 않다”며 “전세계 고숙련 노동자는 유럽연합에서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다만 숙련노동자라도 값싼 인력의 과도한 유입에 따른 실업률 증가를 막기 위해 유럽연합에서 제안받은 임금이 해당국 최저임금의 최소 세 배 이상이 되도록 했다.
블루 카드 제도는 올해 말 법안 마련 절차 등을 거쳐 도입되기까지 2년여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비비시> 방송이 내다봤다. 지금까지 유럽연합의 이민 절차는 회원국마다 제각각이어서 큰 불편을 초래했다. 핀란드에서 체류 및 노동 허가를 받은 데 68일 걸리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비슷한 절차가 6개월까지 걸리기도 했다.
한편, 비숙련 노동자의 이민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프랑스 상원은 23일 이민 신청자에 대해 DNA(유전자) 검사를 요청할 수 있는 이민법을 찬성 185표, 반대 136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심각한 인권침해 소지가 있으며, 특히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 출신 비숙련노동자의 이민을 막으려는 조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도 불법이민은 물론 비숙련 이민자에 대해서는 각종 직·간접 이민 제한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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