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최근 1940년대에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원자폭탄 제조 기밀을 빼낸 한 스파이에게 국가 최고상을 추서함으로써 베일에 가려져왔던 이 스파이의 존재가 이제야 세상에 공개됐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이 12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델마'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했던 조지 코발 박사에게 러시아 최고 영예인 `러시아 연방의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코발은 당시 진행된 미국의 원자폭탄제조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기밀을 빼내 전달함으로써 구 소련의 원자폭탄 제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로 20세기 최고 스파이 중의 한 명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코발을 맨해튼 프로젝트에 침투한 "유일한 소비에트 정보원"이라고 칭하면서 "코발의 노력은 소련이 원자폭탄을 독자 개발하는 시간을 크게 앞당기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코발에 대한 훈장 추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변 인물들로부터 코발에 관한 일화가 줄을 잇고 있다.
코발의 대학 동창이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퇴직 물리학자 아놀드 크래미시는 "코발은 아주 상냥하고 자애롭고 영리했다"고 회고했다.
역시 코발의 동창이자 캘리포니아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선임 물리학자인 스튜어트 D. 블룸은 "그는 야구를 잘했다"면서 "러시아 액센트는 없었고 유창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했다. 그의 신분 증명은 완벽했다"고 전했다.
코발이 스파이로서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평범하지 않은 가족사에서 유례한다. 1913년 미국 아이오와주 시욱스시에서 태어난 코발은 이 곳에서 시티 칼리지를 졸업한 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2년 시베리아의 유대인 자치구 비로비드잔으로 이주했다.
이후 코발은 1934년 모스크바의 멘델리프 화학기술연구소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소련군 정보국(GRU)에 입대해 훈련을 받고 미국으로 다시 건너와 1940년부터 1948년까지 스파이로 활동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된다.
특히 방사선 안전을 담당하던 그는 1945년 6월 데이톤 인근의 폴로늄 정제공장들까지 관할하게 됐는데, 이로부터 미국은 한 달 간격으로 최초의 원자폭탄을 실험한 데 이어 일본에 2발의 원자폭탄을 투하하게 된다.
미국 당국은 종전 후 코발이 미국을 탈출한 직후 그가 소련의 스파이였음을 알게 됐으나 이를 비밀에 부쳤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전기작가인 로버트 S. 노리스는 "미국 정부로서는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는 것은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내부에서 코발의 존재는 2002년 `GRU와 원자폭탄'이란 책이 출판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코발을 암호명으로만 지칭하면서 "방첩기관의 그물망"을 빠져나간 극히 드문 스파이 중의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코발은 2006년 1월31일 사망했으며,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는 코발의 나이를 94세라고 밝혔으나 미국의 지인들은 92세로 기억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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