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보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자녀들의 유해를 90년만에 찾아내는 데는 전문가가 아니라 아마추어들의 역할이 있었다고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이 25일 보도했다.
신문은 유해의 진위가 아직 최종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유해와 물품들이 지난 1991년 발굴된 황제 및 다른 가족들의 것들과 유사하다며 이 같이 전했다.
니콜라이 2세와 가족들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1918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니콜라이 2세를 포함해 알렉산드라 왕비, 자녀 5명, 시종 4명 등 총 11명이 레닌의 지시에 따라 몰살된 것으로 전해졌으나 시신이 처리된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황제 가족들의 살해를 지휘한 야코프 유로프스키는 1934년 보고서에서 "9구의 시신이 황산에 적셔진 뒤 묻혔고 알렉세이 왕자와 공주 한 명은 화장돼 근처 구덩이에 묻혔다"라고 밝힐 뿐이었다.
그후 70년만인 1991년 우랄산맥 동쪽 예카테린부르크에서 9구의 유해들이 극적으로 발굴됐으나 나머지 두 사람인 왕위계승자 알렉세이 왕자와 마리아 공주의 유해는 오리무중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올 여름 한 줌의 단서가 드러나면서 지역 거주자로 아마추어인 비탈리 시토프와 동료들이 주말마다 9구의 유해가 나온 지역으로 달려가 주변 지역을 샅샅이 뒤졌다.
이들은 특히 살해 지휘자인 유로프스키의 진술중 '근처'라는 말에 주목해 지난 91년 발굴지 주변 지역 위주로 조사했으나 난관에 부딪혔다.
결국 이들은 아주 가까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판단아래 영역을 넓히다가 첫 발견지에서 약 64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나머지 2구의 유해를 찾아냈다. 발견 당시에는 불에 그을린 뼈들과 실탄들, 시신을 훼손하기 위해 사용된 황산을 담아둔 단지 등이 발견됐고, 물론 이들은 지난 91년 발견때 나온 것들과 유사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 과학자들이 광범위하게 진위 여부를 검증하고 있으며 아직 최종 판정은 내려지지는 않은 상태다. 이번 발굴에 공을 세운 시토프는 "(살해 관련) 당사자 모두는 당시의 일이 일종의 영웅적인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고자 했다"며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알리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김기성 기자 cool21@yna.co.kr (서울=연합뉴스)
결국 이들은 아주 가까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판단아래 영역을 넓히다가 첫 발견지에서 약 64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나머지 2구의 유해를 찾아냈다. 발견 당시에는 불에 그을린 뼈들과 실탄들, 시신을 훼손하기 위해 사용된 황산을 담아둔 단지 등이 발견됐고, 물론 이들은 지난 91년 발견때 나온 것들과 유사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 과학자들이 광범위하게 진위 여부를 검증하고 있으며 아직 최종 판정은 내려지지는 않은 상태다. 이번 발굴에 공을 세운 시토프는 "(살해 관련) 당사자 모두는 당시의 일이 일종의 영웅적인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고자 했다"며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알리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김기성 기자 cool21@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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