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9일 미국을 방문한 고든 브라운 총리 AP연합
‘미스터 빈’ 빗대 비아냥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잇따른 악재로 취임 5개월여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10년 집권에 염증을 느낀 영국 국민들은 브라운에게 기대를 걸었으나, 최근 들어 영국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지난 9월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은행 노던락의 긴급구제금융 사태를 시작으로, 11월 국세청의 2500만명 개인정보 유출사고, 차명 정치자금 추문까지 ‘사고’가 줄줄이 터져나왔다. 야당 자유민주당의 빈스 케이블 당수 직무대행이 “혼란스런 상태를 더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며 그를 코미디언 ‘미스터 빈’이라고 놀릴 지경이다.
프랑스·독일의 지도자와 함께 ‘유럽의 젊은 기수’로 꼽히던 시절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4일 브라운이 “아직 임기 초반이지만 워낙 상처를 많이 입었다”며 “잇따른 국정 운영 실패와 스캔들로 치명적 손상을 입었던 존 메이저 전 총리의 말년을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차명 정치자금 사건은 브라운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한 부동산 업자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노동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낸 이 사건에 대해, 그는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말해 도덕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시무룩한 표정이지만 믿을 만하다”는 이미지는 사라지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까지 받아야 할 처지다.
브라운은 주위에 의지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인물이 없어,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잇딴 추문의 책임을 모두 지는 것은 그에게 ‘억울한 일’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의 대응이 서툴렀다는 지적이 많다.
브라운이 이끄는 노동당의 지지도 또한 20년 만에 최악으로 떨어졌다. 일간 <텔레그래프>의 지난달 30일 조사에서 노동당 지지율은 32%로, 보수당보다 11%나 뒤진다. 노동당의 한 고위 인사는 “당 분위기가 진짜 침울하다”며 “브라운 총리가 (2010년) 차기 총선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50%”라고 말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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