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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이탈리아 ‘시련의 겨울’…“남은 건 파스타와 피자 뿐”

등록 2007-12-13 23:19

"제기랄! 이제 남은 것은 파스타와 피자 뿐이라니!"

이탈리아 대학원생인 페데리코 보덴(28)은 지난 9월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테너 가수인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이 같이 탄식했다고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이 전했다.

이는 이탈리아 젊은 이들이 자국의 미래를 비관하고 얼마나 좌절감이 깊은 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블로거이자 정치인인 마리오 아디놀피(36)는 "이탈리아의 문제는 세대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젊은 이들은 희망을 갖고 있지만, 여기 이탈리아에서는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개탄한 뒤, "여기에서는 30세에 카-센터를 운영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디놀피는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집에서 잘 보살펴 주면 당신은 집에 눌러 앉아 싸우지 않는다"면서 "당신이 싸우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로부터 권력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20∼30세 연령층의 이탈리아인 중 70%가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고 있고, 100년전 가난한 이탈리아인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대부분의 똑똑한 청년들은 이탈리아를 완전히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혼율은 늘어나고, 대가족이었던 이탈리아는 이제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아 15세 미만 청소년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가 되었고, 85세 이상 인구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지난 해 15∼24세 연령층의 실업률은 21%에 달했고, TV 스타들은 나이가 들었고 올해 미스 이탈리아선발대회의 경우 18세의 실비아 바티스티가 1등으로 뽑히기는 했지만 후보자의 중간 나이는 훨씬 많았다.

또한 정치에서도 여.야를 대표하는 로마노 프로디 총리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68세와 71세로 상당히 연로한 상태이다. 문제는 노인들이 무대에서 스스로 퇴장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로디 이후 총리로 유력한 발터 벨트로니(52) 로마시장은 "이탈리아는 미래를 향한 의지를 잃어가고 있는 나라"라면서 "희망보다는 두려움이 더 많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이 요즈음 이탈리아에서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 집단적 의기소침을 뜻하는 `말레세레'(malessere)라는 썰렁한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사분오열된 정치권, 북-남부간 불균등 성장, 조직범죄, 희박한 국가소속감과 같은 이탈리아에 뿌리깊은 문제점들이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자조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1987년에 이탈리아의 경제는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으나, 이제는 스페인에게마저 따라 잡힐 상황에 처했다. 임금과 외국인 직접투자, 성장률은 물론 인터넷 사용 등에서 유럽의 최하위이다.

특히 과거에는 강점이었던 가족 운영 중소 기업들이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훨씬 낮은 임금을 바탕으로 한 동종 중국 업체들의 경쟁에 밀려 상당수가 문을 닫거나 도산할 위기에 처해 있다.

로날드 스포글리 주이탈리아 미국대사는 "이탈리아인들은 이 환상적인 2천500년된 나무 주위를 감싸고 있는 담쟁이 넝쿨을 잘라내야 한다"며 "그 나무가 넝쿨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그 넝쿨을 잘라낼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이고, 바로 그런 절망감으로 인해 이탈리아인들은 서글프면서 분노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그러나 이탈리아 와인과 커피하우스, 고급 의류 등 일부 업종에서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저임금에 의존하는 전반적인 산업의 경쟁력은 뒤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한편 지난 8일 공개된 연례조사 보고서에서 로마 소재 싱크탱크인 센시스(Censis)는 이탈리아 내에 타성과 불평불만이 만연되어 있어 어떠한 집단적인 시도도 실패로 끝나고 이탈리아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자폐증세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 유 특파원 lye@yna.co.kr (제네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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