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예술가들 ‘해방구’ 부동산 회사 개발 계획
독일 베를린 남동부의 미테 지역에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5층짜리 건물 ‘쾨피’가 있다. 스쿼팅(빈집을 점거해 예술 활동을 벌이는 급진적 사회운동)의 마지막 보루인 이 쾨피가 철거될 운명에 놓이자, 대대적인 철거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간 <슈피겔> 인터넷판이 전했다.
쾨피의 예술가 70여명에게 이곳은 자본주의 질서를 거부하는 해방구이자 마지막 ‘코뮨’이다. 쾨피는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급진적인 예술가·사회운동가들이 점거했던 동베를린 주요 건물 중 하나다. 거주자들은 매주 일요일 전체 회의를 통해 모든 결정을 내린다. 내부에는 아틀리에와 칵테일바를 겸하는 콘서트장, 금속공예 작업장, 문화센터, 헬스클럽 등이 있다. 외벽에는 “사람들 사이 벽은 없다. 벽은 아래와 위 사이에만 있을 뿐이다”라는 유명한 글이 써있다.
그러나 지난 5월 한 부동산 개발회사가 건물을 시세의 절반에 불과한 83만5천유로(약 11억원)에 사들이고, 1년 안에 집을 비우라고 통지했다. 거주자들은 지난 8일 2천여명이 참여한 철거 반대 시위를 벌였고, 집회 참가자 가운데 50여명이 체포됐다. 쾨피 주민들은 건물의 실질 소유주가 각종 분쟁에 휘말린 부동산 투기꾼 지그프리드 넬스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조직적으로 싸움에 나서고 있다. 베를린 시정부는 사태가 올해 초 코펜하겐 철거 반대 폭동처럼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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