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프 브로즈 티토
옛 유고지역서 재조명 바람…통치기 안정 향수
세계 공산주의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유고슬라비아 연방 붕괴와 함께 평가절하된 요지프 브로즈 티토(1892~1980년)가 ‘부활’하고 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1991년 옛 유고연방에서 가장 먼저 떨어져나온 슬로베니아를 중심으로 티토의 재조명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고 27일 소개했다. 유고연방은 2006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분리를 마지막으로 6개 나라로 완전히 분해된 상태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티토 묘역은 한동안 그의 생일(5월25일)이면 수만의 추모객으로 붐볐지만, 연방 붕괴와 전쟁통에 인적이 뜸해졌다. 그러나 최근 ‘유고 노스탤지어(향수)’ 확산으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에서 온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다. 연초에는 슬로베니아에서 한번에 5천여명이 ‘순례’를 왔다.
티토는 체 게바라처럼 컴퓨터와 맥주 등 갖은 상품의 디자인 소재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 상점들도 ‘티토’로 이름을 바꿔달고 있다.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는 지난해 큰 거리 이름에서 ‘티토’를 떼려다 시민들 반발로 중단됐다. 옛 유고연방 소속국끼리의 경제·문화 교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잠든 티토를 불러낸 이유로 손꼽히는 것은 그의 치세가 보여준 안정과 평화다.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2차대전에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에 맞선 유격대 활동을 이끈 뒤 유고연방을 창설한 티토는, 복잡한 역사·민족·종교적 배경이 섞인 유고연방을 평화롭게 관리했다. 티토는 또 1948년 소련과 갈라서고 비동맹·중립 외교노선을 견지해 ‘티토주의’라는 말을 만들었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노동자들에 의한 경영·관리가 뼈대인 ‘자주관리제’는 서구 지식사회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한 슬로베니아 시민은 “연금이 보장되니 저축도 필요없고, 오후 2시면 일이 끝났다”고 ‘태평성대’를 회고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초 12만5천명의 희생자를 낸 발칸전쟁의 피해를 입은데다 궁핍한 보스니아에서도 티토의 인기가 높다.
못마땅해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종신대통령까지 된 티토는 독재자이고, 냉전 붕괴 뒤 폭발한 민족·종교간 분쟁은 그의 시대에 잉태됐다는 주장이다. 드미트리 루펠 슬로베니아 외무장관은 “이런 식의 향수는 당혹스럽다”며 “유고연방에서는 모두 가난했기에 모두가 평등했고, 그것은 독재체제였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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