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유엔본부에서 코소보 독립 선언과 관련한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리기 전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뉴욕/AP 연합
분리주의 마찰빚는 유럽·아시아 나라들 전전긍긍
안보리 결의 뒤집어…“서방이 발칸 흡수” 평가도
안보리 결의 뒤집어…“서방이 발칸 흡수” 평가도
지난 17일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를 193번째 국가로 인정할지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분리주의와 마찰을 빚는 각국이 ‘코소보 모델’의 확산 가능성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번 일에 고무된 분리주의 세력들은 코소보를 전례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여 ‘신민족주의 시대’의 도래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다.
코소보 독립을 두고 대만해협 양쪽에서는 어느 곳보다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5월 유엔 가입 표결을 추진하는 대만은 “유엔은 코소보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대만의 유엔 가입 가능성에도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에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성명에서 “아다시피 중국의 일부인 대만은 (코소보 독립을) 승인할 권리와 자격이 전혀 없다”며 격하게 반응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5월 총선을 앞둔 스페인 사회당 정부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코소보와 비슷한 200여만명의 인구를 지닌 바스크 자치정부는 중앙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0월에 분리독립 찬반투표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바스크 분리주의 정당은 코소보를 “모범 사례”로 평가했다. 스코틀랜드국민당이 2010년 독립 찬반투표를 추진하는 영국, 네덜란드어권인 북부 플랑드르에서 독립 목소리가 높은 벨기에에서도 분리주의는 남의 일만은 아니다.
러시아에게, 우방국 세르비아에게 타격을 입힌 코소보의 독립 선언은 ‘양날의 칼’이다. 그루지야의 친러시아 자치지역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코소보의 독립 선언 직후 자신들도 러시아와 유엔에 독립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의회도 두 지역의 독립 승인으로 ‘보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럴 경우 러시아는 독립을 추구하는 체첸 반군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고질적 분리주의 문제를 안고 있는 스리랑카(타밀주), 인도네시아(아체주·서파퓨아), 미얀마(샨주), 인도(나갈랜드) 등 아시아 나라들도 코소보를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처지다. 코소보의 선언에 “영토 통합성과 주권을 보장한 유엔 헌장 위반”(스리랑카 정부), “유엔 안보리 협의를 마칠 때까지 인정 않겠다”(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피억압 민족 보호라는 대의와는 별개로, 서방 강대국들이 코소보를 세르비아 영토로 규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스스로 부정했다는 점에서도 ‘코소보 모델’은 폭발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언론인 존 래플랜드는 19일 <가디언> 칼럼에서 “코소보의 주권은 허구이고, 실권은 유럽연합 관리들과 서방의 군사력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소보에 대규모 행정·군사 인력을 배치하고 보스니아에서처럼 고위관리 해임권과 법률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점을 들어, 유럽연합이 과거 오스만튀르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처럼 발칸반도를 흡수한 것으로 평가했다. 미국도 코소보에 새 군사기지를 설치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많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옛 지배세력인 서구국가들의 분리주의 문제에 대한 접근을 선의에 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도 문제의 민감성을 인식한듯 18일 “미국은 오늘 코소보를 주권국가로 공식 인정했다”고 밝히면서, “코소보의 (독립) 사례는 다른 지역의 선례가 돼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코소보 모델’의 폭발성을 염려한 유럽연합 외무장관들도 이런 입장을 확인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코소보 독립 찬성 여부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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