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항의 확산 8명 숨져
지난달 대선이 치러진 아르메니아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해 1일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또 이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8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했다고 <비비시>(BBC) 방송 등이 2일 보도했다.
아르메니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19일 실시된 대선에서 로버트 코차리안 대통령의 후계자로 나선 세르즈 사르키샨 총리가 52%를 득표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야권 후보로 나서 21%의 지지를 얻은 레본 테르-페트로샨 전 대통령은 매표와 이중투표 등의 선거 부정으로 패배했다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여왔다.
경찰이 지난달 29일 시위대가 쓰던 중앙광장의 텐트를 무너뜨리고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해산시키자, 양쪽의 충돌이 격화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모인 시위대 1만5천여명은 경찰에 화염병과 돌을 던졌으며, 경찰은 경고사격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시민 7명과 경찰 1명이 숨지고, 일부 가게들에선 약탈 행위도 벌어졌다. 야권 대선 후보인 테르-페트로샨은 가택연금을 당했다.
이번 사태는 코차리안과 테르-페트로샨의 오래된 악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옛 소련 붕괴 후 테르-페트로샨 밑에서 총리를 하던 코차리안은 ‘앙숙’인 인접국 아제르바이잔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한다며, 1997년 핵심 국무위원들과 함께 반기를 들고 테르-페트로샨을 대통령직에서 축출했다. 그는 헌법의 3선 연임 금지 조항에 발이 묶이자 이번 선거에서 사르키샨 총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순번 의장국인 핀란드의 일카 카네르바 외무장관은 1일 성명을 내고 아르메니아 정부의 시위 진압을 비판하면서 “당국이 체포한 야권 지도자와 집회 참가자들을 석방하고 야권과 대화로써 사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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