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유럽 안정,그리스-터키 화해, 터키 EU가입 청신호
화해 분위기 고조됐지만 풀어야 할 과제 산적
화해 분위기 고조됐지만 풀어야 할 과제 산적
남북 키프로스가 21일 통일 협상을 재개키로 합의한 것은 비단 키프로스의 재통일 뿐 아니라 남.동유럽의 안정, 나아가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의 화해에 근접한다는 점에서 문명사적으로도 적잖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그리스계 남키프로스와 터키계 북키프로스가 통일된다면 이는 수백년간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반복해온 그리스-터키 관계의 회복과 함께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도 막혔던 통로가 뚫릴 수 있기 때문이다.
◇ 키프로스의 분단 및 재통일 노력
키프로스는 330-1191년 그리스 비잔틴 제국의 일원이었고 1571년부터 1878년까지는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이로 인해 주민 구성은 그리스계가 80%, 터키계가 20%를 차지한다.
터키 제국이 쇠락하면서 키프로스는 1878년부터 영국령에 편입됐으며, 1960년 8월 영국과 그리스, 터키 3국 간 '런던협정'을 통해 독립했다.
독립할 때까지 키프로스의 그리스인들과 터키인들은 민족과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큰 적대감 없이 어울려 살아왔다. 런던협정도 그리스계와 터키계 간 권력분점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963년부터 그리스계 정부가 그리스와의 병합을 추구하며 터키계와의 권력공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을 시도하면서 분쟁이 싹트기 시작했다. 양측의 갈등이 잦은 무력충돌로 비화하자 유엔은 평화유지군(UNFICYP)을 파견, 가까스로 치안을 유지했고, 이들의 불안정한 '동거'는 1974년 그리스와의 합병을 추구하는 친(親) 그리스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발발하면서 완전히 깨졌다. 터키는 미국의 묵인 하에 터키계 주민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북키프로스를 강제 점령했고, 분단의 역사가 시작됐다. 전 영토의 37%에 해당하는 북키프로스에는 아직도 3만여명의 터키군이 주둔하고 있다. 북키프로스는 1983년 정식으로 국가 수립을 선언했으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을 통해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현재까지 오직 터키 만이 북키프로스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유엔은 1975년부터 양측의 분쟁 해소를 위한 중재를 시작했으나 별다른 전환점을 찾지 못하다가 2002-2004년 유엔이 키프로스 통일 방안을 마련, 재통일 노력이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2004년 4월 남북 각각 실시된 통일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북키프로스 주민의 64%의 찬성한 데 반해 남키프로스는 75%가 반대표를 던지면서 키프로스 통일을 위한 유엔의 중재는 물거품이 됐다. 남키프로스 주민들은 통일안이 북키프로스의 이익에만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당시 투표 부결에 앞장섰던 사람은 타소스 파파도풀로스 전 대통령이었다. 국민투표가 부결된 뒤 남북 통일 협상은 중단됐고, 뒤이어 남키프로스는 단독으로 EU에 가입하고 북키프로스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면서 분단은 고착화로 향해갔다. 그러나 지난달 남키프로스에서 통일 노력을 역설해온 드미트리스 크리스토피아스 공산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그는 당선 직후 직접 유엔에 중재를 요청했고 북키프로스의 최고지도자 메흐메트 알리 탈라트도 쌍수를 들고 이를 환영했다. ◇ 통일 협상 재개 배경과 의미는 2004년 국민투표를 부결시킨 남키프로스 국민이 통일 노력을 호소해온 크리스토피아스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복잡한 국내 정치 문제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분단 상황의 지속이 키프로스에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 때문이다. EU에 가입하고 소득도 높아졌지만 북측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재의 정세는 EU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키프로스의 소외감을 키워왔다. 터키 바로 밑에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에서 터키와 대립하는 상황도 경제,외교적으로 남키프로스에 이익을 주지 못했다. 특히 예전 터키계 주민들과 아무런 충돌 없이 살았던 경험을 가진 많은 유권자들은 통일이 돼도 다시 이들과 어울려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북키프로스에 대한 포용정책에 점차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분단 이후 터키 정부의 인구 증대를 위한 이주 정책에 의해 키프로스로 들어온 터키인들에 대해선 반감을 가지면서도 토착 터키계 주민들에 대한 적대감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남키프로스인들은 얘기한다. 남키프로스 주민들이 통일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터키 군의 철수와 함께 뒤늦게 들어온 이주민들을 터키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측의 통일 협상과 화해가 급진전한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터키의 남키프로스 인정과 그리스-터키 관계 회복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터키는 남키프로스의 인정에 앞서 북키프로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터키가 남키프로스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터키의 EU 가입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만큼 EU 가입을 열망하고 있는 터키 정부로선 가입 협상 진전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소할 방법을 찾고 있다. 따라서 남북의 통일 협상은 터키와의 외교 관계 해법을 동시에 찾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아울러 키프로스를 놓고 벌여온 그리스와의 오랜 분쟁을 종식할 수 있는 전기도 마련해줄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키프로스가 통일된다면 이는 그리스계와 터키계,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라는 대척점이 역사상 유례없는 자발적인 합일을 이루게 된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 선언으로 분리주의 운동의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키프로스의 통일 노력은 국제사회에서 다민족 사회의 긍정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발점을 마련할 수 있을 전망이다. ◇ 다시 열린 통일 협상 전망은 분단 이후 34년 동안 남북 키프로스 모두에서 친 통일 정치인이 최고 지도자가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데서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현지 언론들은 키프로스 분단의 상징인 레드라 거리의 통행 재개는 무엇보다 통일의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할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향후 회담에서 맞을 고비 때마다 이를 풀어갈 수 있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피아스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이번에 우리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실패한다면 이는 양측 키프로스 국민의 미래를 황폐화시킬 것"이라며, 회담 성공의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통일 앞에 놓인 장애물을 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핵심 사안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남측이 유엔의 재결의에 의한 연방제 통합을 주장하는 반면 북측은 2개 국가의 연합을 내세우고 있다. 통일 정부 구성도 남측이 인구비례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북측은 양측의 동등한 참여를 고집하고 있다. 영토 재조정과 터키군 철수의 선후 문제도 풀기 어려운 과제다. 북측이 인구(8대2)에 비례해 훨씬 넓은 37%의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것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남측의 주장인데 반해 북측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다. 터키 군의 철수가 통일정부 수립 전에 이뤄져야 하는지, 수립 후에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터키군의 강점으로 추방된 그리스계 주민의 재산 회복도 북측으로선 본국 이주민을 터키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크리스토피아스 대통령은 "모든 문제가 하루 아침에 풀릴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섣부른 낙관을 경계한 것도 이런 산적한 문제들 때문이다. 키프로스 대학의 마리아 하드기파블루 교수는 "남북 키프로스인들이 서로 사랑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서로 신뢰하고 상호 수용 가능한 해법을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창 특파원 faith@yna.co.kr (니코시아=연합뉴스)
그러나 1963년부터 그리스계 정부가 그리스와의 병합을 추구하며 터키계와의 권력공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을 시도하면서 분쟁이 싹트기 시작했다. 양측의 갈등이 잦은 무력충돌로 비화하자 유엔은 평화유지군(UNFICYP)을 파견, 가까스로 치안을 유지했고, 이들의 불안정한 '동거'는 1974년 그리스와의 합병을 추구하는 친(親) 그리스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발발하면서 완전히 깨졌다. 터키는 미국의 묵인 하에 터키계 주민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북키프로스를 강제 점령했고, 분단의 역사가 시작됐다. 전 영토의 37%에 해당하는 북키프로스에는 아직도 3만여명의 터키군이 주둔하고 있다. 북키프로스는 1983년 정식으로 국가 수립을 선언했으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을 통해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현재까지 오직 터키 만이 북키프로스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유엔은 1975년부터 양측의 분쟁 해소를 위한 중재를 시작했으나 별다른 전환점을 찾지 못하다가 2002-2004년 유엔이 키프로스 통일 방안을 마련, 재통일 노력이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2004년 4월 남북 각각 실시된 통일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북키프로스 주민의 64%의 찬성한 데 반해 남키프로스는 75%가 반대표를 던지면서 키프로스 통일을 위한 유엔의 중재는 물거품이 됐다. 남키프로스 주민들은 통일안이 북키프로스의 이익에만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당시 투표 부결에 앞장섰던 사람은 타소스 파파도풀로스 전 대통령이었다. 국민투표가 부결된 뒤 남북 통일 협상은 중단됐고, 뒤이어 남키프로스는 단독으로 EU에 가입하고 북키프로스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면서 분단은 고착화로 향해갔다. 그러나 지난달 남키프로스에서 통일 노력을 역설해온 드미트리스 크리스토피아스 공산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그는 당선 직후 직접 유엔에 중재를 요청했고 북키프로스의 최고지도자 메흐메트 알리 탈라트도 쌍수를 들고 이를 환영했다. ◇ 통일 협상 재개 배경과 의미는 2004년 국민투표를 부결시킨 남키프로스 국민이 통일 노력을 호소해온 크리스토피아스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복잡한 국내 정치 문제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분단 상황의 지속이 키프로스에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 때문이다. EU에 가입하고 소득도 높아졌지만 북측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재의 정세는 EU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키프로스의 소외감을 키워왔다. 터키 바로 밑에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에서 터키와 대립하는 상황도 경제,외교적으로 남키프로스에 이익을 주지 못했다. 특히 예전 터키계 주민들과 아무런 충돌 없이 살았던 경험을 가진 많은 유권자들은 통일이 돼도 다시 이들과 어울려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북키프로스에 대한 포용정책에 점차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분단 이후 터키 정부의 인구 증대를 위한 이주 정책에 의해 키프로스로 들어온 터키인들에 대해선 반감을 가지면서도 토착 터키계 주민들에 대한 적대감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남키프로스인들은 얘기한다. 남키프로스 주민들이 통일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터키 군의 철수와 함께 뒤늦게 들어온 이주민들을 터키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측의 통일 협상과 화해가 급진전한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터키의 남키프로스 인정과 그리스-터키 관계 회복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터키는 남키프로스의 인정에 앞서 북키프로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터키가 남키프로스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터키의 EU 가입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만큼 EU 가입을 열망하고 있는 터키 정부로선 가입 협상 진전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소할 방법을 찾고 있다. 따라서 남북의 통일 협상은 터키와의 외교 관계 해법을 동시에 찾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아울러 키프로스를 놓고 벌여온 그리스와의 오랜 분쟁을 종식할 수 있는 전기도 마련해줄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키프로스가 통일된다면 이는 그리스계와 터키계,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라는 대척점이 역사상 유례없는 자발적인 합일을 이루게 된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 선언으로 분리주의 운동의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키프로스의 통일 노력은 국제사회에서 다민족 사회의 긍정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발점을 마련할 수 있을 전망이다. ◇ 다시 열린 통일 협상 전망은 분단 이후 34년 동안 남북 키프로스 모두에서 친 통일 정치인이 최고 지도자가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데서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현지 언론들은 키프로스 분단의 상징인 레드라 거리의 통행 재개는 무엇보다 통일의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할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향후 회담에서 맞을 고비 때마다 이를 풀어갈 수 있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피아스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이번에 우리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실패한다면 이는 양측 키프로스 국민의 미래를 황폐화시킬 것"이라며, 회담 성공의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통일 앞에 놓인 장애물을 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핵심 사안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남측이 유엔의 재결의에 의한 연방제 통합을 주장하는 반면 북측은 2개 국가의 연합을 내세우고 있다. 통일 정부 구성도 남측이 인구비례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북측은 양측의 동등한 참여를 고집하고 있다. 영토 재조정과 터키군 철수의 선후 문제도 풀기 어려운 과제다. 북측이 인구(8대2)에 비례해 훨씬 넓은 37%의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것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남측의 주장인데 반해 북측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다. 터키 군의 철수가 통일정부 수립 전에 이뤄져야 하는지, 수립 후에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터키군의 강점으로 추방된 그리스계 주민의 재산 회복도 북측으로선 본국 이주민을 터키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크리스토피아스 대통령은 "모든 문제가 하루 아침에 풀릴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섣부른 낙관을 경계한 것도 이런 산적한 문제들 때문이다. 키프로스 대학의 마리아 하드기파블루 교수는 "남북 키프로스인들이 서로 사랑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서로 신뢰하고 상호 수용 가능한 해법을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창 특파원 faith@yna.co.kr (니코시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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