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가입 걸림돌 되자 처벌 완화 추진
“처방 미흡” 대 “안보 위협” 의견 갈려
“처방 미흡” 대 “안보 위협” 의견 갈려
“나는 터키인이어서 행복합니다.”
터키의 공공기관 곳곳에 걸린 표어다. 학생들은 이것을 매일 되풀이해 암송한다. 다분히 민족·국가주의적인 이 표어는 ‘터키다움에 대한 모욕’을 금지하는 법으로 뒷받침되지만, 유럽연합 등 서방국가는 터키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난해왔다. 실제로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을 비롯해 많은 지식인들이 문제의 법률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런데 이런 터키판 ‘충성 맹세’가 유럽연합 가입의 걸림돌로 작용하자 터키 정부는 의회에 관련 형법을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고, 의회는 오는 24일 정부 개정안을 표결할 예정이라고 <에이피>(AP)통신이 전했다. 유럽연합은 터키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회원국 가입 부적격에 해당한다고 압박해왔다.
그러나 법조문 일부만 개정하려는 방침은 땜질처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바체셰히르 대학의 젱기즈 악타르 교수는 “터키의 형법조문에는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는 또다른 조항들이 적어도 20개나 된다”며, 법개정 효과에 의문을 나타냈다. 독일 주간 <슈피겔>도 18일 온라인 영어판 머리기사에서 ‘터키 정부가 법을 하나 바꿀 뿐, 이견은 여전히 억누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많은 터키인들은 법 개정이 터키의 안보를 위협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에이피>는 전했다. ‘법 개정은 유럽연합에 대한 굴복’이라고 받아들이는 우익 성향의 야당인 민족주의행동당은 최근 법개정에 반대하는 선동적 내용의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 당의 파루크 발 부총재는 “법 개정은 쿠르드 반군들이 거리낌없이 터키를 모욕하도록 부추기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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