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영토보전’ 서방과 정면 충돌
러시아 의회가 25일 그루지야 안 자치지역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독립국으로 승인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는 그루지야의 영토 보전을 존중해야 한다는 서방과 정면 대립하는 것이다.
이날 러시아 연방의회(상원)와 두마(하원)는 각기 만장일치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두 지역의 독립을 승인하도록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 의회의 의결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향후 서방과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유용한 카드가 될 것이라고 <비비시>(BBC) 방송 등 주요 외신들은 분석했다. 앞으로 두 자치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독립 승인 절차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최종 승인만을 남겨둔 상태다.
보리스 그리즐로프 두마 의장은 이날 “카프카스(코카서스) 지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러시아의 역할은 더 증대될 것”이라고 자치지역에 대한 독립 승인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두 자치지역의 지도자들도 두 지역에 대한 독립 승인이 유럽연합과 미국의 지원 아래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의 사례보다 훨씬 더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오세티야의 지도자 에드워드 코코이티는 연방의회 연설을 통해 “러시아가 대량학살로부터 남오세티야 지역을 구했다”고 밝혔고, 압하지야의 지도자 세르게이 바가프시도 “다시 그루지야와 하나의 국가 안에 속하지 않을 것”이라며 의회의 결정을 반겼다.
하지만 이날 러시아 의회의 결의안 채택에 그루지야와 서방국가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가) 무력으로 유럽의 국경을 바꾸려는 시도”라며 비난했다. 앞서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24일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손상된 군사력을 재건할 것이며, 두 지역을 그루지야로 통합하는 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이런 자신감엔 서방의 지지가 깔려 있다. 유럽연합은 이날 즉각 두 자치지역이 그루지야 영토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앞서 유럽연합은 다음달 1일 그루지야 사태와 관련해,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 정상회의를 열기로 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 소집이 그루지야를 지원해야 한다는 유럽 회원국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24일 밝혔다.
러시아의 태도에 개별 회원국들의 불만도 증폭되고 있다. 러시아 의회의 독립 승인 소식이 전해지자, 독일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독립을 승인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탈리아도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흑해 연안 소치에서 드미트리 로고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주재 러시아 대사를 만나 “쉽지는 않겠지만, 나토와의 관계 중단 등을 포함해 여러가지 선택을 고려하고 있다”며 두 자치지역에 대한 독립 승인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한편, 24일 구호물자를 실은 미 해군 소속의 구축함 맥폴호가 그루지야 바투미항에 입항하면서, 긴장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주로 군사 공격용으로 쓰이는 구축함이 구호물자를 실어 나른 것에 대해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 해군은 맥폴호가 핵탄두를 장착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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