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젊은이들이 9일 밤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에 모여, 정부의 이민 정책에 항의하다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15살 소년의 죽음에 항의하는 뜻으로 권총을 그린 펼침막을 들고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테네/ AP 연합
정권 퇴진 목소리 높아…집권 신민주당 최대 고비
‘총리 사임이냐, 혼란의 지속이냐?’
미국 시사주간 <타임> 인터넷판은 9일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그리스 총리가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였다고 전했다. 총리 퇴진과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는 이날까지 나흘째 계속되면서 그리스 전역 12개 도시로 확산됐다. 10일에는 250만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그리스 양대 노조가 총파업을 벌이며 집권당을 압박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일 “아테네 시위대의 횃불은 유럽 전역으로 번진 경기한파에 맞선 첫 대중시위로 기록될지 모른다”며 많은 문제와 갈등을 안고 있는 그리스에서 경기침체의 고통이 사회불안으로 폭발한 것으로 분석했다. 아테네 외교정책 두뇌집단(싱크탱크)을 이끌고 있는 타노스 도코스는 경기침체로 사회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며 “중산층과 저소득 계층은 실직과 임금 동결, 세금 인상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그리스에선 경기침체로 인한 타격이 심각하다.
사회 곳곳에 잠복했던 정부에 대한 불만은 이번 시위를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시위의 선두에 섰던 학생들이 열악한 교육환경과 고실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스의 청년 실업률은 20%를 웃돈다. 아테네대학의 야니스 스토나라스 교수는 “그리스의 장기적 문제는 재정적자가 아니라 교육”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이래 높은 경제성장에도 그리스의 교육예산 지출은 학생 1인당 연간 5천유로를 넘지 않았다. 유로존 국가 중 가장 낮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파나요티스 아다모폴로스는 “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와도 월 600유로(약 109만원)짜리 일자리밖에 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유로화 도입 뒤 공공지출을 줄여 재정적자를 낮추려는 그리스 집권당의 각종 개혁정책은 격렬한 저항에 부닥쳤다. 노조들은 연금수령액 삭감을 뼈대로 하는 정부의 연금법 개혁 시도에 반발해 왔다. 반면 정부는 수년간 지속된 극심한 빈부격차에 속수무책이었다.
집권당인 우파 신민주당(ND)은 지난해 9월 총선에서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한 이래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아테네의 한 공무원은 “정부는 완전히 존재감을 잃었다”고 했다. 제1야당인 사회당의 조직활동가 페트로스 콘스탄티누는 “더 이상 (경찰 총격으로 숨진) 소년의 죽음은 큰 이슈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정권 퇴진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집권당 주변 인사들의 끊이지 않는 부패 추문도 카라만리스 총리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9일 여론조사에서 사회당은 집권당보다 지지율이 4.8%포인트 앞섰다. 의석이 반수보다 한 석 더 많을 뿐인 집권당으로선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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