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노벨상수상 강연서 ‘이라크 침공 부시 비난’
지난 200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가 오랜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
핀터의 아내인 역사학자 앤토니아 프레이저는 <가디언>에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고인은 위대했으며 그와 함께 33년을 함께 살았다는 것은 특권이었다”라고 말했다. 핀터의 대리인인 주디 데이슈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핀터가 24일 숨을 거뒀으며, 장례식은 소규모로 치러질 것이라고 밝혔다.
‘부조리극의 대가’로 불리는 핀터는 1930년 런던 동부 핵크니에서 유태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립연극아카데미를 중퇴하고 배우로 활동하다 57년 첫 희곡작품인 <방>을 발표했다. 59년 <관리인>이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지위를 굳혔다. <생일파티> <귀향> <풍경> <침묵> 등의 작품을 남겼다. 81년에는 존 파울스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인>을 영화 시나리오로 각색하기도 했다. 배우, 시인, 연출가로도 활동했다.
<비비시(BBC)>는 “핀터는 영국의 무대에서 독보적인 인물이었고, 1950년대 이후로 무대를 지배했다”고 평했다. 핀터는 일상적 차원에서 인간의 실존문제를 다뤘으며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뮈엘 베케트와 더불어 대표적인 부조리극 극작가로 불린다. 2005년 노벨상 수상위원회는 “핀터의 작품들은 일상에 숨은 함정을 폭로했다”고 수상 이유를 꼽았다.
그는 무대밖 현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삶을 살았다. 2차대전 시기 영국인들의 반 유대주의를 겪었던 그는 이후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인권운동과 반전에 앞장선 진보적 예술가였다. 2002년 말 식도암 진단을 받은 핀터는 3년 뒤 “정치적 활동에 힘을 쏟기 위해 극작 활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오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미국과 영국의 ‘테러와의 전쟁’과 외교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그는 2005년 노벨상 수상을 앞둔 기념강연에서 이라크 침공을 ‘국가에 의한 테러’로 규정하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 침공은 국제법 개념을 완전히 모독하는 강도짓이자 뻔뻔스러운 국가의 테러”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그들을 대량학살범과 전쟁범죄자라고 부르겠느냐. 그들에 대한 단죄는 정당하다”고 역설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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