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유럽

“실천적 좌파여 단결하라”…‘붉은 우체부’에 열광

등록 2009-02-10 22:48수정 2009-02-10 22:49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 창당대회를 가다
지난 6~8일 파리 근교 생드니에서 프랑스 좌파의 새로운 실험, ‘반자본주의신당’(NPA)이 탄생했다.

10대 소년부터 신부까지 수천명이 모인 창당대회장에서 당의 탄생을 바라보는 극좌파 베테랑 활동가들은 감개무량했다. 어디서도 그 누구와도, 아무것도 함께 하지 않는 ‘꼴통’으로 불리던 그들이 절대 진리라고 믿던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변화를 위해 모든 급진적인 세력과 손을 맞잡았다.

40년된 낡은 혁명공산주의연맹(LCR)을 스스로 해산하게 하고, 새로운 반자본주의신당으로 재탄생시킨 정치 스타 는 올리비에 브장스노다. 겨우 30대 중반에. 여전히 아침에는 편지 배달을 하느라 당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당대회장에 청바지와 후드티를 입고 나타나 연설하는 이 ‘붉은 우체부’에게 프랑스 국민들은 열광한다.

창당을 맞아 브장스노가 던진 메시지는 간결했다. “자본주의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신자유주의는 망했는데도, 그들(기득권층)은 여전히 권좌를 지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사회운동과 함께 하는 새로운 좌파가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반자본주의창당을 맞아 브장스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우파 언론들은 ‘해결책이 없는 남자’라고 비아냥거렸다. 경제위기를 등에 업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인기만 높아진 철부지라는 폄하이지만, 국민적 지지를 얻어가고 있는 그를 무시할 수도 없다는 고민이 엿보인다. 브장스노는 사회당 대통령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 등을 누르고 좌파 지도자들 가운데 국민선호도 1위(18%)를 달리고 있다.

프랑스 가톨릭교회의 국제연대를 담당하고 있는 사회당 지지자 앙뚜왕 손탁 신부는 “브장스노는 트로츠키주의 전통에 서 있으면서 전혀 트로츠키주의자처럼 이야기하지 않는 유일한 정치 지도자다”라고 평가한다. 사회당 루아얄의 정책은 이미 좌파인지 우파인지 알 수 없게 됐다고 모두가 불평한다. 들라노에 파리시장은 비교적 인기가 높지만, 너무 보보스(진보적인 상류 계급) 성향이 강해 노동자들이 선뜻 다가서기 힘들다. 그 즈음에 트로츠키 전통에 속하는 극좌파 브장스노가 화려한 스타로 떠올랐다.

물론, 반자본주의신당의 탄생이 브장스노의 인기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로 너무 돌아서 버린 사회당에 지친 좌파들이 새로운 좌파 정당을 만들고자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제법 오래되었다. 여러 사회운동단체들에서도 정치를 이대로 외면하기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그동안 분분했고, 신당 창당은 좌파 진영의 고민과 탐색의 산물이다. ‘2명이 있으면 3개의 파벌이 만들어지는 것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이라고 냉소하던 급진적 생태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토빈세(투기적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을 추진하던 프랑스 아탁(ATTAC)을 비롯한 사회운동단체 활동가들이 ‘분열의 역사’를 넘어 새로운 당으로 모여들었다.

브장스노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실천적인 좌파들의 단결을 호소하였고, 자신의 모든 기득권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구좌파들이 신당의 당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도록 10%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당 이름도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좌파들이 함께하자는 뜻에서 ‘무식하게도’ 반자본주의신당이라고 지었다.

신당은 전통적인 지지층인 노조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자녀들이 몰려 살며 체제에 반란을 일으키곤 하는 대도시 교외지역에 대한 특별위원회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빈집을 점거하거나 수퍼마켓의 물품들을 노숙자들에게 나눠주는 직접 행동에도 직접적으로 결합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지도하기만하는 당이 아니라 함께하는 당이 되겠다는 것이다. 다른 좌파 정당들과의 관계 설정도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창당대회에서는 곧 다가오는 유럽연합 의회선거에서 다른 좌파정당들과 연합하자는 안을 8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승인했다.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냉소를 스스로 뛰어넘은 것이다. 신당에서 동아시아를 담당하고 있는 국제연대활동가 피에르 루소는 “파리를 중심으로 한 중앙에서 다른 단체들을 설득하기 힘들면, 지역의 활동가와 시민들이 직접 시민들을 만나 우리는 이런 당을 만들려고 한다고 설득했다”고 했다.

앙뚜앙 신부는 브장스노와 신당의 실험이 분명 좌파정당의 공간을 더 넓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그들이 저항정당을 넘어설 수 있는가의 문제다. 프랑스에서는 집권여당과 야당 외에 소수의 지지를 받는 정당을 저항정당이라고 부르는데, 과연 브장스노가 저항정당의 위상을 넘어 사회당을 누르고 야당으로까지 설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앙뚜앙은 저항정당의 역사에서도 새로운 실험이 시작된 것만은 분명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번 창당대회에는 한국의 진보신당을 비롯해 전 세계 좌파 정당에서 150여명이 축하사절로 참석했다. 그리스 좌파연합블록의 대표로 온 크리스토퍼는 “지난해 12월부터 그리스 민중들이 격렬한 반체제 시위를 벌였지만, 현재 좌파정당운동은 신자유주의 야만에 맞선 새로운 사회운동의 역동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반자본주의신당은 이런 과제를 해내고 있는 좌파정당 운동의 새로운 역사적 실험”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보수의 천년왕국’이 열렸다고 말하는 절망의 시절에, 촛불항쟁을 경험하면서 대중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한다고 깨닫고 있는 한국의 좌파들에게도 프랑스의 ‘꼴통 극좌파’ 실험이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생드니·파리 엄기호/진보신당 참가단, <닥쳐라 세계화> 저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