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고만고만한 나이 때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학교에서 공부 잘하니?’ 혹은 ‘이다음에 커서 뭐 되고 싶어?’라는 말이다.
‘대통령이요.’, ‘판사요.’, ‘의사요.’ 약간 구체적인 아이들은 ‘과학자요.’ 정도,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우리 아이들의 대답은 몇 가지 정해져 있다.
진정 아이들의 꿈이라기보다는 어른이 선망하고 좋아하는 직업을 갖다 대야 바로 그 어른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영악한 계산에서 나온 대답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정도 나이에도 의외로 이 꿈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책만 들입다 파면서 대통령을 꿈꾸는 일. 좀 황당하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또 그것이 그리 틀린 길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렴, 대통령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라며, 어른들은 제대로 꿈을 향해 가고 있다고 아이들을 격려한다.
대통령을 꿈꾸며 오늘도 단기 집중 고액과외가 끝나면 이 학원 저 학원을 쫓아다니다가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는 우리 아이들은 정치인이 과연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할까.
독일에서도 분데스칸슬러(독일수상)를 꿈꾸는 아이들을 더러 보았다. 독일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관심을 확실히 드러내기 때문인지 꿈도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정치인을 꿈꾸는 아이들은 직업의 특성상 어떤 단체에서도 눈에 띈다. 그런데 그 눈에 띈다는 것이 성적이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가장 먼저 학급 반장을 자원하고 나서며, 김나지움에 들어가서도 대부분 학생회 일에 열정을 쏟는다. 수업도 다른 과목은 몰라도 정치 시간만은 눈을 반짝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수한 점수를 받는 등 누가 봐도 확실하게 기질을 드러낸다.
작년 우리 큰아이 학교 졸업식을 즈음한 행사에서 졸업생 대표로 작별인사를 한 학생회장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만일 그녀석이 시의원에라도 출마한다면 그날 굳힌 표만 해도 꽤 되리라.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나는 13년 동안의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생활을 마감하고,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 다녔던 사랑하는 이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정들었던 교실과 친구들, 선생님, 후배들…….훌쩍훌쩍!” 뭔가 기발한 한마디를 기대했던 고별사의 서두는 예상과는 달리 구태의연하면서 감상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눈물 닦는 시늉을 하던 학생회장 녀석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뒤통수를 탁 치더니, “아참! 나는 14년이었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아직도 제가 수학실력이 좀 부족해서 낙제한 것은 깜박 빼고 계산했네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나는 14년의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생활을....... ” “푸 하하하…….” 일순간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뒤쪽에서는 “야, 멋있다, 멋있어!”, “계속해라 계속해!”라며 지지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재학생들이 죽 둘러 모인 큰 강당에서 메가폰을 잡은 그는 넘치는 유머감각과 번득이는 재치로 그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우리 아들과 친구들의 영웅이 되었다. 작고 평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에게는 하늘을 찌르는 인기와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통솔력과 리더십에, 어떤 선생님과 격론을 해도 막힘없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논리력과 언변을 두루 갖춘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회장으로서는 부족함이 없었던 그였지만, 사실 공부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나마 졸업성적이 평균 3점을 유지한 것도, 3점 이하면 학생회에서 제적되는 엄격한 교칙 때문에 엄청 노력한 결과라고 스스로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정치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수업시간에는 졸기가 일쑤였고 작은 기회만 주어지면 담론을 일삼아 수업을 방해하곤 했던 이 녀석이 학교를 좋아했던 유일한 이유는 학생회 때문이었다. 수업태도와는 달리 학생회장으로서의 그는 이미 생경한 아마추어를 넘어선 프로수준이었다. 성적이 부실한 단점이 마치 제도권 교육에 도전하는 자신의 강한 의지라도 되는 듯, 공식석상에서 자랑스럽게 떠벌일 수 있는 것이 또 그의 뻔뻔하면서도 탁월한 재주이기도 했다. 공부벌레도 날라리도 아닌, 카리스마 넘치는 달변가였던 이 녀석의 꿈은 역시 유명한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독일 수상 정도는 맡겨주면 얼마든지 소화해 낼 수 있다고 벌써부터 은근히 선거운동을 하는듯한 발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꿈은 멀리 밤하늘의 달 옆에 걸어두고, 당장은 열심히 책상을 지켜야하는 소임에 충실한 것이 옳은지, 일찌감치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꿈과 함께 커가는 것이 옳은지 솔직히 판단이 정확히 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완동물을 키우며 수의사를 꿈꾸고,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CEO를 생각하고, 양로원에서 실습을 마치자 사회사업가가 되겠다는 독일 아이들을 보면 우리 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나는 13년 동안의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생활을 마감하고,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 다녔던 사랑하는 이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정들었던 교실과 친구들, 선생님, 후배들…….훌쩍훌쩍!” 뭔가 기발한 한마디를 기대했던 고별사의 서두는 예상과는 달리 구태의연하면서 감상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눈물 닦는 시늉을 하던 학생회장 녀석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뒤통수를 탁 치더니, “아참! 나는 14년이었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아직도 제가 수학실력이 좀 부족해서 낙제한 것은 깜박 빼고 계산했네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나는 14년의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생활을....... ” “푸 하하하…….” 일순간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뒤쪽에서는 “야, 멋있다, 멋있어!”, “계속해라 계속해!”라며 지지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재학생들이 죽 둘러 모인 큰 강당에서 메가폰을 잡은 그는 넘치는 유머감각과 번득이는 재치로 그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우리 아들과 친구들의 영웅이 되었다. 작고 평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에게는 하늘을 찌르는 인기와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통솔력과 리더십에, 어떤 선생님과 격론을 해도 막힘없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논리력과 언변을 두루 갖춘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회장으로서는 부족함이 없었던 그였지만, 사실 공부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나마 졸업성적이 평균 3점을 유지한 것도, 3점 이하면 학생회에서 제적되는 엄격한 교칙 때문에 엄청 노력한 결과라고 스스로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정치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수업시간에는 졸기가 일쑤였고 작은 기회만 주어지면 담론을 일삼아 수업을 방해하곤 했던 이 녀석이 학교를 좋아했던 유일한 이유는 학생회 때문이었다. 수업태도와는 달리 학생회장으로서의 그는 이미 생경한 아마추어를 넘어선 프로수준이었다. 성적이 부실한 단점이 마치 제도권 교육에 도전하는 자신의 강한 의지라도 되는 듯, 공식석상에서 자랑스럽게 떠벌일 수 있는 것이 또 그의 뻔뻔하면서도 탁월한 재주이기도 했다. 공부벌레도 날라리도 아닌, 카리스마 넘치는 달변가였던 이 녀석의 꿈은 역시 유명한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독일 수상 정도는 맡겨주면 얼마든지 소화해 낼 수 있다고 벌써부터 은근히 선거운동을 하는듯한 발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꿈은 멀리 밤하늘의 달 옆에 걸어두고, 당장은 열심히 책상을 지켜야하는 소임에 충실한 것이 옳은지, 일찌감치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꿈과 함께 커가는 것이 옳은지 솔직히 판단이 정확히 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완동물을 키우며 수의사를 꿈꾸고,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CEO를 생각하고, 양로원에서 실습을 마치자 사회사업가가 되겠다는 독일 아이들을 보면 우리 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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