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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블로그] 스웨덴 야당 당수의 동성 키스

등록 2009-04-13 17:34

사진 출처: 스웨덴 메트로
사진 출처: 스웨덴 메트로
오는 5월 1일부터, 동성 커플의 결혼과 그에 따르는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법이 스웨덴에서 효력을 가진다. 스웨덴 의회 릭스다그(Riksdag)에서 4월 1일에 있었던 투표가 6시간에 걸친 논쟁 끝에 찬성 261표, 반대 22표, 기권 16표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기독민주당(Kristdemokraterna)을 제외한 모든 당이 찬성한 결과다. 이에 감동(?)한 야당 총수이자 사회민주당 대표 모나 살린(Mona Sahlin)은 RFSL(Riksförbundet för sexuellt likaberättigande, 성평등을 위한 협회)의 부대표를 껴안고 키스를 하는 대담함(?)을 보여서 수많은 신문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재미있는 사실은 여자끼리 키스했다는 것 때문에 비난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목 받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 같다고 비난 받은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법에 발 맞추기 위해 스웨덴 교회 연합(Svenska Kyrkan)은 주례사마저 바꿨다. ’äktenskap(혼인)’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빼 버리고, 동성 부부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주례사의 일부를 고쳤다. äktenskap의 사전적 정의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모양’인데, 이는 남자와 남자, 혹은 여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부부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두 분은 이로써 진정한 부부가 되셨습니다.’로 대체된다.

지금은 그 전통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오랫동안 기독교 국가였던 스웨덴에서는 이런 결정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미 일반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동성 부부들이 스웨덴 교회의 이 같은 결정에 기뻐하는 것은 정식으로 교회에서 다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갑작스레, 예고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동성 ’파트너(5월 1일이 되면 폐지될 법이지만, 현재 동성 커플은 ’파트너’라는 법적 관계로 등록할 수 있다)’들이 합법적으로 아이를 입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보다 훨씬 전부터 학생들은 동성애가 죄가 아니며,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 병은 더더욱 아니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학교나 선생님들이 동성애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한결같다. ’이상하지도, 나쁘지도, 배척 받아야 할 것도 아니다.’ 이에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선생님들은 확고한 의사를 표현한다(설사 선생님 자신은 부정적 견해가 있더라도). 감춰야 할 문제처럼 쉬쉬하지도 않고, 오히려 학생들이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 처한 동성애자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 역시 선생님들의 역할이다.

나는 얼마 전, 학교의 상담선생님 리누스와 ’내가 마흔 살이 될 때’라는 게임을 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해 리누스가 고안한 이 게임은, 쌓아놓은 카드 무더기(미래에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들어있다)에서 무작위로 카드를 골라 내가 마흔 살이 되면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직업, 취미, 말버릇 등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가상의 상황을 만들고, 그 중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카드 두 개를 바꾸는 것이다(참고로 나는 스톡홀름 중앙의 사과상자에서 12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저널리스트였다). 그 카드들 중 ’누구와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리누스는 일반적이라면 ’네 미래의 남자친구가’라는 말이 나와야 할 시점에 ’네 남자친구, 아니면 여자친구’라는 호칭을 대신 사용했다. 그 이후로도 리누스는 내가 여자보다는 남자를 선호한다는 것을 확신할 때까지 연애 이야기만 나오면 그 긴 호칭을 고집했다.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일 지도 모르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였다(나는 그 긴 문장을 발음해야 하는 리누스가 불쌍해서 그냥 남자친구라고 불러도 된다고 말했다).

학교 도서관에만 가 봐도 이런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 도서관 추천도서는 트랜스젠더인, 즉 여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남자로 태어난 오빠(언니?)를 둔 여자아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여러 가지 의미로 충격적인 그 책이 미국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내가 한국에 살 때 다니던 영어학원의 원어민 선생님은 ’trans’라는 접두사의 예로 나온 ’transgender’라는 단어를 내가 안다고 말하자 ’그런 것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라며 화제를 돌렸다. 그 전에 만난 미국인들은 모조리 기독교 계열 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들, 아니면 맥도날드 점원들 밖에 없어서, 미국인에 대한 내 인상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스웨덴 학교의 동성애 정책(?)을 조금 더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얼마 전 단체로 연극을 관람하러 스톡홀름 시내에 갔을 때였다. 왕립 콘서트하우스에서 벌어지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무대도 하나뿐이고 배우는 두 명밖에 없는 조그만 연극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웃 학교인 솔렌투나 국제학교 9학년 학생들과 함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학생과 그 학생의 학생상담원(학생들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조언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구들로, 우리 반에서는 투표로 뽑고 있다)을 맡은 동급생의 말 많고 탈 많은 사랑 이야기를 관람했다. 참고로 두 역할은 모두 남학생이었고, 연기하는 배우들도 둘 다 남자였다. 두 사람의 키스 장면에서 관객들은 비명과 환호 중간쯤의 이상한 탄식들을 쏟아냈다(스톡홀름에서는 드문 광경이 아니어서 나는 별 생각 없이 관람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연극을 보고 난 뒤 학생들의 분위기가 상당히 화기애애했고, 선생님들은 ’꽤 괜찮은 연극이었지?’라며 학생들과 감상을 나눴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변화와 다름에 익숙하다. 짧은 시간 동안 비정상적일 정도로 다양한 문화가 수많은 이민자들과 함께 흘러 들어왔고,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과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머리를 요란하게 물들인 펑크족, 치렁치렁한 드레스의 소녀들, 온갖 장식이 붙어 있는 전통의상을 입고 한낮의 거리를 활보하는 이민자들. 나와 남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에 동성애라는 ’다른 점’ 역시 비교적 쉽게 받아들인다.

한국은 나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에 대해 이해하거나 용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스웨덴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문화가 어울리는데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 고루한 관념의 틀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은, 으레 악의에 찬 시선과 수군거림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절대다수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한국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들의 권리를 지키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더 이상 다른 사람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대해 수군대지 않는 것이 성숙한 태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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