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큰아이 담임선생님과 약속이 있어서 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아비투어(수능시험)가 정확히 일주일 후면 시작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아무리 학교생활을 여유 있게 하는 독일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12학년이나 13학년 때는 나름대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온 터라, ‘그래도 이때쯤이면 책상에 머리들을 들이 박고 있겠지’ 생각하며 학교 현관을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학교는 난리법석이었다. 건물의 중앙에 자리한 큰 홀은 번쩍이는 싸이키 조명에 가지각색으로 분장을 한 아이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정신없이 춤 삼매경에 빠져 있었고, 똑 같이 화려하게 차려입은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어울려 ‘하하 호호’ 춤추고 떠들고 난리가 아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큰아이 담임선생님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날은 다름 아닌 13학년 아이들이 아비투어를 일주일 앞두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거나하게 한바탕 놀아재끼는 날이었다. 이 아비투어축제는 오래된 이 학교의 전통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아이들 스스로 준비한 무대 장식이며 조명이며, 보아하니 하루 이틀 분의 작업량이 아니었다.
또한 일주일 내내 매일 다르게 분장하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파티 준비 때문에 정신없이 우왕좌왕 하는 동안 축제의 분위기는 사실상 일주일 전부터 이어져 왔던 것 같다. 선생님 말로는 예전에는 꼬박 일 주일을 연일 이렇게 놀았는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아 지금은 수업이 없는 파티는 하루만 허락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날은 또 학생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선사하기 위해 학교의 모든 열쇠를 13학년 아이들에게 주고 마음대로 시설들을 쓸 수 있게 허락하기도 한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이런 여유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학생들은 수능 일주일 전에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선생님도 그 모습을 독일 TV를 통해 한 번 보았다며 ‘거기도 너무 하지만 여기도 좀 너무하죠?’라며 웃었다. 말을 하다 보니 가슴 한구석이 참 많이 허허로웠다. 우리는 왜 그래왔는지, 지금까지도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가장 아름다운 10대 후반 꽃 같은 나이, 청춘이라는 이름 하나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그 좋은 봄날에 말이다. 그러나 큰 시험을 앞두고 이렇게 풀어져서 놀고 있는 이 아이들도 그렇고, 1년 365일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늘 긴장해야 하는 한국 아이들, 모두 다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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