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성문화가 갈수록 개방되고 첫 성경험의 연령층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른 10대의 임신과 출산율도 당연히 증가할 것인데 우리 사회의 편견은 예전에 비해 얼마나 달라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오늘 시내에 나갔다가 아이들과 함께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무리 건강에 좋지 않다고 떠들어도 아이들은 여전히 햄버거라면 사족을 못 쓰고 있으니, 가끔 기분 전환 겸 들르는 곳이다.
두 아들 녀석과 신나게 이야기 하면서 시시덕거리고 있는데, 옆자리에 우리 아들보다 두세 살 위로 보이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맛있게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옆에 사람이 있든 없든 서로 어루만지고 쪽쪽거리며 낯 뜨거운 사랑놀이를 하고 있으니,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아들, 안 보는 척 하면서도 힐끔힐끔 쳐다 보는 것이 꽤 부러운 모양이다.
“그렇게 부럽니?”
“뭐가 부러워.”
“그럼 왜 그렇게 자꾸 보는데?”
“내가 언제? 엄만 괜히 또 트집 잡고 있어.”
“넌 언제 저런 여자 친구 생기냐? 여자 친구 만들려면 먹는 것 좀 그만 밝히고 몸 관리 좀 해야 하는 거 아냐?”
“또 먹는 거랑 연결시킨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너 여자 아이들은 얼굴 보다는 남자의 근육에 더 넘어간다는 것 모르는구나.”
“나도 다 알아.”
“그래? 그럼 오늘부터 다이어트는 고사하고 ‘배터지게 먹지 않기’부터 시작해봐.”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그런데 엄마! 나 하나 더 먹어도 돼?”
“아이고~ 말을 하는 내가 잘못이지 네게 뭘 바랄 게 있다고.”
신나게 수다를 한바탕 떨면서 낄낄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바로 옆에 세워진 유모차에서 ‘앙~’ 하고 아기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먹던 햄버거를 얼른 내려놓고 우는 아기를 안아 일으켰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이 데려온 아기가 분명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호기심에 은근히 귀를 그 쪽으로 쫑긋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대화를 들어보니 두 친구는 아기의 부모였다. 아이가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보이는 엄마와 아빠는 어느 모로 보나 분명 이제 사춘기를 막 벗어난 10대 후반 청소년들이다. 우는 아기를 달래는 모습이 나이든 부모들 보다 어설프기는 해도 제법 엄마 아빠 티가 난다. 내 새끼라 생각하니 한없이 예쁜 모양이다.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면 혀를 끌끌 차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다행스럽고 좋아 보인다. 비록 실수로 임신을 했겠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낳아서 키우며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책임지는 모습들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다 큰 어른들도 제자식이 싫다고 버린다는 세상이다 보니 내 자식을 소중히 거둔다는 것 하나만도 칭찬받을 일이지 싶다. 더구나 밖으로 나가 정신없이 돌아다니고만 싶은 어린 나이에 말이다. 가끔 가는 햄버거집이지만 그 곳에서 심심찮게 아기를 데려온 청소년들을 보았다. 처음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세월이 지나면서 자꾸 보게 되니 내 생각도 많이 달라진다. 독일도 갈수록 10대의 임신과 출산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현재 통계에 의하면 독일 여학생 평균 5명 중 한 명이 15세에 첫 성경험을 한다. 20년 전에는 평균연령이 18.5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나이가 많이 낮아졌다. 그러다 보니 10대의 임신율도 늘어나게 되고, 낙태가 쉽지 않은 나라다 보니 출산율도 자연스럽게 증가해서 미혼모와 10대의 출산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그러나 10대에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혹은 미혼모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고,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려는 이 사회의 분위기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물론 유아유기 등의 잔인한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지만 의외로 또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한국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으리라 기대하지만, 20여 년 전 나는 모 미혼모 보호 시설을 취재하며 그 심각성을 아프게 경험했었다. 그곳은 출산할 때까지만 산모를 보호하고 4주 동안의 몸조리가 끝나면 아이는 시설에 맡겨지고 엄마는 그곳을 떠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시설들을 돌아보며 불신과 미움이 가득한 눈빛의 앳된 얼굴들과 마주칠 때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이런 시설까지 만들어 냈구나 생각하니, 뭔지 모르지만 숨 막히고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미혼모라 하더라도 10달 동안 몸 안에 품고 있던 내 자식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는 의문이 들었다. ‘혹 시설에서 아기를 낳고 나서 마음이 변해 키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느냐’고 원장에게 물었더니 의외로 내가 그 곳을 찾았을 당시까지는 단 한사람의 산모도 없었다고 했다. 너무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은 대답이라 누차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한국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본능적인 지고지순한 사랑, 그 모성으로 조차도 견뎌내지 못하는 사회의 편견이 우리를 더욱 차갑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20년 전 미혼모 시설을 돌아보며 느꼈던 그 숨 막히는 답답함이 무엇이었는지 독일에 살면서 차츰 해답을 얻게 된다. 그 때 생각을 하며 이 아이들을 보니 더욱 아름답다. 부모고 자식이고를 떠나서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려하는 그 모습이 좋아 보이고 그것을 용인하고 보호해 주려는 이 사회가 갑자기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뭐가 부러워.”
“그럼 왜 그렇게 자꾸 보는데?”
“내가 언제? 엄만 괜히 또 트집 잡고 있어.”
“넌 언제 저런 여자 친구 생기냐? 여자 친구 만들려면 먹는 것 좀 그만 밝히고 몸 관리 좀 해야 하는 거 아냐?”
“또 먹는 거랑 연결시킨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너 여자 아이들은 얼굴 보다는 남자의 근육에 더 넘어간다는 것 모르는구나.”
“나도 다 알아.”
“그래? 그럼 오늘부터 다이어트는 고사하고 ‘배터지게 먹지 않기’부터 시작해봐.”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그런데 엄마! 나 하나 더 먹어도 돼?”
“아이고~ 말을 하는 내가 잘못이지 네게 뭘 바랄 게 있다고.”
신나게 수다를 한바탕 떨면서 낄낄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바로 옆에 세워진 유모차에서 ‘앙~’ 하고 아기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먹던 햄버거를 얼른 내려놓고 우는 아기를 안아 일으켰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이 데려온 아기가 분명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호기심에 은근히 귀를 그 쪽으로 쫑긋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대화를 들어보니 두 친구는 아기의 부모였다. 아이가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보이는 엄마와 아빠는 어느 모로 보나 분명 이제 사춘기를 막 벗어난 10대 후반 청소년들이다. 우는 아기를 달래는 모습이 나이든 부모들 보다 어설프기는 해도 제법 엄마 아빠 티가 난다. 내 새끼라 생각하니 한없이 예쁜 모양이다.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면 혀를 끌끌 차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다행스럽고 좋아 보인다. 비록 실수로 임신을 했겠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낳아서 키우며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책임지는 모습들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다 큰 어른들도 제자식이 싫다고 버린다는 세상이다 보니 내 자식을 소중히 거둔다는 것 하나만도 칭찬받을 일이지 싶다. 더구나 밖으로 나가 정신없이 돌아다니고만 싶은 어린 나이에 말이다. 가끔 가는 햄버거집이지만 그 곳에서 심심찮게 아기를 데려온 청소년들을 보았다. 처음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세월이 지나면서 자꾸 보게 되니 내 생각도 많이 달라진다. 독일도 갈수록 10대의 임신과 출산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현재 통계에 의하면 독일 여학생 평균 5명 중 한 명이 15세에 첫 성경험을 한다. 20년 전에는 평균연령이 18.5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나이가 많이 낮아졌다. 그러다 보니 10대의 임신율도 늘어나게 되고, 낙태가 쉽지 않은 나라다 보니 출산율도 자연스럽게 증가해서 미혼모와 10대의 출산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그러나 10대에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혹은 미혼모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고,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려는 이 사회의 분위기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물론 유아유기 등의 잔인한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지만 의외로 또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한국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으리라 기대하지만, 20여 년 전 나는 모 미혼모 보호 시설을 취재하며 그 심각성을 아프게 경험했었다. 그곳은 출산할 때까지만 산모를 보호하고 4주 동안의 몸조리가 끝나면 아이는 시설에 맡겨지고 엄마는 그곳을 떠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시설들을 돌아보며 불신과 미움이 가득한 눈빛의 앳된 얼굴들과 마주칠 때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이런 시설까지 만들어 냈구나 생각하니, 뭔지 모르지만 숨 막히고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미혼모라 하더라도 10달 동안 몸 안에 품고 있던 내 자식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는 의문이 들었다. ‘혹 시설에서 아기를 낳고 나서 마음이 변해 키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느냐’고 원장에게 물었더니 의외로 내가 그 곳을 찾았을 당시까지는 단 한사람의 산모도 없었다고 했다. 너무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은 대답이라 누차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한국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본능적인 지고지순한 사랑, 그 모성으로 조차도 견뎌내지 못하는 사회의 편견이 우리를 더욱 차갑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20년 전 미혼모 시설을 돌아보며 느꼈던 그 숨 막히는 답답함이 무엇이었는지 독일에 살면서 차츰 해답을 얻게 된다. 그 때 생각을 하며 이 아이들을 보니 더욱 아름답다. 부모고 자식이고를 떠나서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려하는 그 모습이 좋아 보이고 그것을 용인하고 보호해 주려는 이 사회가 갑자기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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