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학교에도 ‘스승의 날’이라는 것 있니?” “스승의 날? 그게 뭐하는 날인데?” “선생님에게 그동안 가르쳐주셔서 고맙다고 감사하는 날이지. 선물도 드리고 꽃도 달아드리면서…….” “선생님에게 우리가 왜 감사해? 수업시간에 조용히 해주면 선생님이 우리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뭐야? 그럼 선생님이 너희 가르치느라 고생하는데 고맙지도 않단 말이야?” “하기 싫은 공부 가르쳐 주는데 뭐가 고마워, 수업시간 빼먹는 선생님이 가장 고맙지 !” “말을 말자, 말을 말아!” 5월이 되어 스승의 날이 가까워 오니 혹시 독일에도 내가 모르는 스승의 날이 있는지 궁금해 우리 아들에게 물었다가 한심한 대답만 듣고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우리와는 선생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다른 아이들이다보니 월급 받고 일하는 선생님에게 왜 각별히 감사해야 하는지 얼른 이해되지 않은 듯 했다. 환절기면 기침을 콜록콜록 하면서도 분필을 놓지 않았던 우리 학창시절 선생님들이 보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와 간신히 걸어 다니면서도 아기 낳기 바로 전날까지 수업하시던 가정 선생님이며, 몽둥이를 휘두를지언정 한 번도 결석한 일 없었던 학생주임 선생님도 생각난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오던 학생주임 선생님, ‘저 선생님은 아프지도 않나?’ 내심 아파서 결석이라도 하길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때는 큰 병 없이 선생님이 결근하는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하물며 선생님의 잦은 병가가 아이들의 수업에 문제가 되는 일은 더욱 흔치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 봉투를 받건, 몽둥이를 휘두르건 그래도 우리 선생님들은 자신의 안위 보다는 아이들을 더 걱정했다는 사실만은 확실 한 것 같다. 4월과 5월은 방학도 많고 연휴도 많아 학교 가는 날이 별로 없다. 이럴 때면 아픈 사람이 왜 그리도 많은 것인지. 그것도 꼭 연휴 앞뒤로 아프단다. 환절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동안 학교나 직장은 들뜨고 어수선한 분위기다. 학교에서는 특히 교사들의 병가가 문제된다. 독일은 긴 겨울방학이 없는 대신 일주일간의 단기방학이 많다. 그 때마다 아픈 교사들이 있다. 방학이 시작될 즈음이면 아프기 시작해서 어떤 때는 끝나고 며칠 후까지 가기도 한다. 그건 십중팔구 휴가를 떠났거나 휴가 후유증이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반마다 꼭 한 명씩은 끼어 있었던 것 같다. 한 명까지는 봐주겠는데 어떤 때는 2~3명까지. 그러면 한 학기에 정말 거짓말 보태지 않고 진도는커녕 우왕좌왕 절반은 자율학습, 절반은 보충 수업할 선생님 찾다가 시간을 모두 보내 버린다. 초등학교 때 만일 이런 선생님이 담임이라도 되면, 4년 동안 한 선생님에게 배워야하는 이곳 상황에서, 그 반 아이들의 초등학교 생활은 엉망이 되고 만다.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작은 아이 담임선생님이 작년에 임신을 했었다. 임신 하고나서부터는 출석일 수 보다 결석일 수가 더 많았다. 아프다고 한 달간 결석하더니, 이번엔 반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기 때문에 전염되면 안 된다고 일주일, 몇 주 동안 잠잠하다 싶으면 또 일주일, 결국 아기 낳기 한 달 전에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다행히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배정받아 부모들의 불만이 끝나기는 했지만, 그 일 때문에 모두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심심찮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부모들이 아무리 항의 하고 떠들어도 좀처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또 이 나라다. 더 답답한 것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도 악착같이 문제 삼는 학부모도 드물뿐더러 여하튼 재수 없으면 아이들만 희생양이 되고 마는 것이다. 원리 원칙과 규율에 투철한 독일 교사들은 아이들을 대할 때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또 웬만해서는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항상 친절하고 자상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직자로서는 더없이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그뿐이다. 학교 문을 나서면 끝이다. 그들은 월급을 받은 만큼 전문직업인으로써 충실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사들도 당연히 많지만 우리나라 선생님들 보다는 아이들을 머리 보다는 가슴으로 끌어않으려는 교사는 적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수업 할 때는 성실해 보이는 선생님도 몸이 조금만 불편하다 싶으면 아이들의 진도고 뭐고 없다. 무조건 병가다.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만큼 확실하게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그 이상일 경우도 많다. 우리 아이 7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부활절 방학 2주 전부터 아프다고 병가를 내더니 방학이 끝나고 와서 한다는 말이, 방학 동안 스키를 타러 갔단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프다고 2주일이나 학교를 결근하더니 휴가는 어떻게 갔냐?’고 묻자, 방학 바로 전날 다 나았다 대나. 거짓말이라도 좀 그럴듯하게 하지 너무 어이없었다. 이렇게 공부해야할 학생들이 선생님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교육부에서는 대책이 없다. 도대체 어디다 하소연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하긴 당사자인 학부모들도 손 놓고 있으니 누구를 탓하랴. 학교뿐 아니라 우리 남편이 다니는 독일 회사를 봐도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는가 하면 호시탐탐 게으름 피울 연구만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너무 안정된 나라, 더 이상 생존경쟁을 위해 몸을 날릴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인지,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는 이런 헐렁한 분위기를 보면 훌륭한 제도와 시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곧 이 나라도 ‘저녁의 나라’들에 합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런 계절이 되면, 유독 내 어린 시절 한국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우리들의 선생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독감이 걸렸거나 몸살이 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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