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은 매달 백만 유로를 벌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중대한 국제 문제들을 다루고 있고, 다른 한사람은 여론 조사상 급락하고 있고 현안을 해결하는데 성공하지 못함으로서 의기 소침해있다. 토니 블레어는 운명의 키스를 받은 것처럼, 항상이 행운이 뒤따르고, 행복하고, 웃음을 띠우는 것처럼 보였다. 마법사의 희생자로서 브라운은 풀이 죽어있고 미소를 짓으려고 애쓰려고 할 때조차도 죽은 미소처처럼 보인다. 비판가들은 브라운을 존 메이저 (John Major), 앤쏘니 이든 (Anthony Eden), 리차드 닉슨 (Richard Nixon)과 비교하면서 “최악의 지도자”로서 평가한다. 즉, 무능력 (incompetence), 부족한 판단, 참담한 실패에 대한 정치적 대명사로서 표현되고 있다.
토니 블레어는 여론 조사에서 최소의 지지율과 함께 수상직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일종의 새처 (Thatcher)의 상황을 회피했다는 것에 만족해 하면서. 새처는 무한정히 수상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보수당내의 반란으로 대체되었고, 울음과 함께 다우닝 스트리트 10을 떠나야만 했었다. 당내부와 외부에서의 반발과 논쟁에도 불구하고 블레어는 그의 의지로 수상직을 그만둔다는 여론을 조장한 것처럼 보인다. 2007년 6월 인디펜덴트 (The Independent)는 토니 블레어의 브라운을 재무 장관에서 해임시킬 비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전당 대회에서 그 둘은 포옹없이 악수로서 서로간의 교환 인사를 했다.
블레어는외교 정책에 있어 실제적인 성공들이 있었지만, 이라크와 미국, EU에 있어 많은 실패를 이루었다. 2007년 5월, YouGov 여론 조사에 따르면 22% 응답자만이 블레어는 믿을 수 있다고 대답했고, 59%는 영국의 위치를 세계적 수준에 끌어오르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2007년 고든 브라운이 수상이 되었을때, 노동당은 이미 영국 정치사에 있어 가장 긴 십여년동안 권력에 있었다. 이라크 전쟁의 재난과 참전 논란, 사금융 (private finance)에 대한 첫 조치에서 증가된 불균형에 이르는 국내 정책 실망으로 노동당의 인기는 하락하고 있었다. “블레어는 이 정치적 유산을 우리에게 던져버리고 떠나버렸다”라고 한때 블레어 지지자였던 로버트 해리스 (Robert Harris), 베테랑 정치 평론가이면서 소설가, 는 말했다. 2007년에 긴 경제적 붐은 또한 둔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또한 부분적으로 브라운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의 참여를 반대하지 않았고 재무부 장관으로서 그는 유지할 수없는 재산 (unsustainable property)와 개인적 빚 거품을 잘 대처하는데 있어서 실패했다.
장관적인 정치, 작고 큰 부패로 국민들은 레이버당에서 멀어졌다.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연대를 연계시키는 개혁적이고 현대적 레프트의 계획이 필요한 상태에 이르렀다. 2007년 11월, 노동당의 비밀 자금 스캔들이 드러났다. 2003년부터 2007년에 노동당의 금고에 들어온 숨겨진 후원 자금의 발견되었다. 인디펜던트 (Indendent)지에 실린 여론조사에 따르면 보수당은 40%, 노동당은 27%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11월 보수주의적인 신문인 데일리 메일 (Daily Mail)은 부자들에 대한 세금 부과는 블레어가 수상이었던 시절 노동당이 주장했던 두개의 성스러운 원칙들을 어겼다고 말했다. 즉, 국가의 부채를 증가하지 않고 세금을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
브라운은 1983년에 첫 국회의원이 되었고 2007년 수상이 되기까지 그의 지적인 능력과 사회적 양식에 있어 대단한 영국 정치인중의 하나로 평가되었다. 브라운은 블레어에게 강의를 했다. 94년의 “Granita”식당에서의 약속과 그 약속 불이행으로 인한 블레어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6월 24일 인디펜데트의 고든 브라운을 해임시키기 위한 블레어의 비밀 계획에 의하면 브라운은 블레어가 그의 두번째 수상 임기 동안에 권력을 브라운에게 넘겨 주겠다는 이해와 함께 저녁 식사를 떠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브라운에게로의 권력 이양은 레이버에 39%, 보수당에 36%의 지지를 보였고, 개인적 경쟁에서도 40%의 지지를, 캐머런 (Cameron)에게는 22%로 응답했다.
그는 국민과의 관계에 있어서 과묵하고 경직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리차드 리브스 (Richard Reeves)는 “브라운은 라디오상에 있어 매우 잘하지만, 텔레비젼과는 매우 힘든 관계를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텔레비젼상에 브라운은 지쳐보이고 늙어보인다. 그의 국민과의 대화상에서 그 자신의 스코틀랜드적 직선적임(directness)과 비형식성의 측면을 억누르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는 또한 정책 결정상에 있어 우유부단성을 보여주고 있다. 재무장관시절의 독단적이고 단호한 결의로 정책을 결정한 이미지와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의 총선을 말했다가 번복한 것, 영국에 충성스러운 네팔 군인들인Gurkha의 베테랑 대우의 거부, 노던 록 (Northern Rock) 은행의 구제, 등.
영국에서의 10여년간의 경제적 붐은 커다란 의미에서 브라운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강한 의심이 있다. 그는 56살이고, 구 인물이고, 10여년간 권력의 정상에 있었고, 블레어와 같은 카리스마가 없고, 여론 조사상에서 데이빗 캐머런 (David Cameron)에게 뒤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행운은 다음 선거가 2009 또는 2010년에 있다는 것이다. 뒤떨진 인기를 회복하고 승리자라는 것을 보여줄 시간이 있지만, 서둘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의 세가지 수는 a) 새로운 얼굴들을 장관에 등용, 예를 들면, 데이븓 밀리반트 (David Miliband)를 외무 장관으로 등용하는 것, b) 블레어리즘의 다른 얼굴인 부자와 가난한 자들간의 커가는 갭을 감소하는 것에 더 치중하는 것, c) 이라크 전쟁에 대해 블레어와의 거리를 두고, 전쟁에 참여 했던 것은 실수였다라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금융 위기로 시작된 경제적 위기와 노동당 내부의 스캔들로 인해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영국 매스미디어들은 브라운의 각각의 조치에 있어서 실수들을 찾아내고 폭로하고 있다. 스캔들, 거짓말, 모욕, 등. 그의 정치적 적들에게서 나오는 그에 대한 공격은 확산되고 있고, 과장되고 있고, 항상 더 개인적이고, 나쁘고 거침없이 행해지고 있다. 2009년 2월 인디펜던트지의 ComRes 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보수당은 43%, 노동당은 28%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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