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 없는 저작권 침해
최근 모 유명 일간지 논설위원이 내 블로그 글을 도용했던 문제 때문에 여기저기 저작권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게 되면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이 참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더 위험하게 느낀 것은 불법도용에 관한 죄의식이 너무 없다보니 저작권법을 악용해 짭짤하게 돈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무슨 범죄 집단이라도 되는 듯 비난하는 무리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얄팍한 상술로 전문적으로 저작권에 걸리는 짓을 한 사람만 찾아다닌다는 것이 분명 얼굴 두꺼운 돈벌이이긴 하지만 그들을 욕할 자격은 법을 어긴 사람의 입장에서는 없어야 한다. 미성년자나 잘 모르고 저지른 초범의 경우는 법의 관용에 호소해야지 장사 속으로든 어쨌든 불법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손가락질은 무엇인가 선후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중고등학교 때는 글다운 글을 써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경험해 볼 수도 없었고, 대학 학사논문마저도 여기저기 그대로 복사한 글을 짜깁기해서 냈으니 할 말은 없다. 그때는 모든 학생들이 그랬기 때문에 나도 그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출처를 표기하기는 했지만 한두 문장 옮기는 것을 가지고 출처까지 걱정하는 조심성을 보인 기억은 없다. 우리는 그랬다. 학교에서 이에 관해 배운 일도 없었고, 그 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주는 어른들도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도 불법 다운로드는 범죄라는 사실 알아
그렇다면 독일 아이들은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독일에서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를 불법 다운로드 받는 데 익숙하고 정 많은 사람들이다 보니 혼자 보지 못하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끼리 돌려보곤 한다. 당시 헤리포터 1편이 영화화되어 한창 붐을 일으키고 있었고 비디오로는 아직 출시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어떤 한국분이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최신작을 불법 다운로드 받아 만든 CD를 어찌어찌 구해서 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한창 화제가 되었던 영화라 학교만 가면 헤리포터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집에 그 필름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던 우리 아들이 반 아이들에게 ‘우리 집에 헤리포터 CD있다.’고 자랑스럽게 떠들며 다녔다고 한다. 그랬더니 바로 ‘그거 불법 아니야!’라며 친구들이 이상한 눈으로 노려보더라는 것이다.
그날 우리 아들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 우리 집에 있는 헤리포터 CD 불법이었어?’라고 소리치며 친구들에게 망신당한 이야기를 했다. 작은 잘못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결벽증이 있는 아이가 엄청 큰 상처를 받은 것이다. 나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래?’라며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묻는 아이에게 정확하게 해줄 대답이 없었다. 우리 아이는 불법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그 때 처음 배웠는데 뜻밖에도 독일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 불법 다운로드가 범죄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가 아니라 부모에게 받는 교육이었다.
출처표기 없는 인용문 도용은 낙제점수
독일학교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세미나도 많고 장문의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할 일이 많아진다. 그러다 보니 수업시간마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저작권 침해에 관한 검열을 받아야할 상황이 많아진다. 작게는 옆 사람의 숙제를 베껴 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원문을 표기하지 않은 도용까지, 걸리면 무조건 0점 처리 된다. 그러다보니 학생들 스스로도 혹 자신의 글이 그 부분에 문제가 있지나 않을까 항상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김나지움 고학년에 올라가면 파흐아르바이트라고 하는 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조사해서 논문 형식의 짧은 보고서를 제출하는 시간이 있다. 그 때 만일 출처를 밝히지 않고 남의 글을 도용한 사실이 적발되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6점을 받는다. 독일학교에서 6점이란 의미는 우리나라 대학 성적처리 방식으로 비교하면 F를 말하는 것인데 전 과목 중 6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학년을 올라갈 수 없다. 낙제를 하게 되는 것이다. 불법 도용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지나칠 정도로 확실한 벌이다.
고학년에 하게 되는 파흐아르바이트를 대비해 요즘 10학년인 우리 아이도 저작권 침해의 중요성에 대해 과목마다 교육 받고 있다. 수업시간마다 선생님들은 ‘남의 글을 출처 없이 도용하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고 강조하며 ‘모든 교사들은 한 문장만 입력하면 바로 출처를 알아낼 수 있는 저작권 침해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검색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의도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블로그나 미니홈피등 굳이 전문 언론인이 아니라도 글을 쓰고 발표할 기회가 너무나 많고 어디서든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 특별한 죄의식 없이 남의 글을 베껴 쓰던 구시대적 우리 문화도 변할 때가 되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학교에서부터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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