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중동문제 등 제목소리, 남미와 협력 강화
군사·자원 바탕 영향력 증대…유럽 분열 등 초래
군사·자원 바탕 영향력 증대…유럽 분열 등 초래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여전히 건재한 힘과 영향력을 과시하며, 국제사회의 관심과 동시에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옛소련 붕괴 이후 미-소 양극의 냉전질서가 해체되면서 러시아는 국가 위상이 추락하고 경제는 망가지고 러시아어 사용 인구까지 급감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최근 몇년새 러시아는 옛 소비에트 연방이었던 인근 독립국가연합(CIS) 나라들뿐 아니라 유럽과 중동, 아프가니스탄, 멀리는 남미의 좌파집권 국가들에까지 영향력을 넓히며 20년만에 러시아 제국의 르네상스를 누리는 양상이다.
아프가니스탄, 중동 등 주요 분쟁지역의 역학관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상수로 떠올랐고, 이란 핵문제에서도 해결 방향을 좌우할 카드를 쥐고 있다. 또 미국의 턱밑인 남미권과도 경제·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막대한 석유자원 공급력을 바탕으로 유럽연합(EU) 국가들에도 큰소리를 친다. ‘유일 슈퍼파워’라는 미국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자미르 카불로프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는 12일 <에이피>(AP) 통신 인터뷰에서 “나토군이 (아프간에) 병력을 늘리면 늘릴수록 더 곤경에 빠질 것”이라며, 옛소련의 아프간 침공 경험까지 언급하며 서방에 여유 섞인 우려와 충고를 보냈다. 러시아가 앞서 이달 초부터 나토군에 아프간 전쟁 군수품 보급을 위해 자국영공을 개방해준 데 이어, 나토의 아프간 관련 논의에도 상임 자격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러시아는 아프간전에 개입하려는 것은, 이슬람 무장세력이 체첸공화국 등 이슬람권에 속하는 옛소련연방국들의 분리독립운동 세력과 손잡는 것을 차단하고 아프간전쟁을 주도한 서방에 맞서 역내 패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군사행동이나 경제제재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서방과 대립각을 세워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지난 11일 “이란의 핵프로그램이 순전히 평화적 목적을 위한 것이란 주장을 의심할 근거가 없다”며 “이란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매우 위험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런 태도는 이달말까지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지 않으면 제재 절차를 밟겠다며 압박 강도를 높여온 서방의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7일 러시아를 극비리에 방문해, 이란 핵무기 견제와 중동의 이슬람무장세력 지원 중단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신빙성을 얻고 있다.
‘러시아의 재림’은 유럽을 다시 동-서로 나눠놓고 서유럽 국가들끼리도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일 “러시아의 발언력 증대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놓고 유럽 국가들이 분열되고 있”고 ‘범대서양 동향’ 연례 여론조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유럽인들은 특히, 러시아가 반대하는 ‘나토 확대 방안’과 유럽연합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 대책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는 남미 국가들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3일 러시아로부터 탱크, 방공미사일 등 22억 달러 규모의 무기구매 차관을 제공받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주 체결한 무기구매 계약에 따라 러시아산 탱크 92대와 항공기 요격 미사일 시스템을 확보하게 된다. 베네수엘라는 2005년 이후 4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러시아산 무기를 구매해 왔다. 러시아는 볼리비아에도 군 장비 구입에 1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12일 이같은 계약을 공개하고, 3천만달러를 들여 러시아로부터 대통령 전용기를 구입할 것이란 방침도 확인했다.
러시아는 옛소련 연방국들에 대한 간섭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내년 1월 대선을 앞둔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에 대해 개입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4일 보도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재선을 노리는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의 지지도가 한자릿수를 맴도는 반면, 2004년 대선 때 러시아가 밀어줬던 빅토르 야노쿠비치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있고, 지지율 2위인 율리아 티모셴코 현 총리 역시 러시아가 용인해줄 만한 후보란 평가다.
그러나 러시아가 ‘잃어버린 지위’를 되찾고 거침없이 세력을 팽창하려는 시도는 인접국 뿐 아니라 서방의 경계심을 강화하고 고립을 자초할 우려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마샤 리프먼 편집장은 지난주 독일 베를린에서 한 연설에서, 러시아가 지금도 옛소련 시절의 힘과 영향력에 걸맞는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점점 우방국을 잃고 지도자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와의 협력 가능성과 이점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그러나 러시아가 ‘잃어버린 지위’를 되찾고 거침없이 세력을 팽창하려는 시도는 인접국 뿐 아니라 서방의 경계심을 강화하고 고립을 자초할 우려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마샤 리프먼 편집장은 지난주 독일 베를린에서 한 연설에서, 러시아가 지금도 옛소련 시절의 힘과 영향력에 걸맞는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점점 우방국을 잃고 지도자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와의 협력 가능성과 이점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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