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불 정상 블레어에 등 돌려…같은 후보 지지할 듯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유럽연합(EU) 초대 대통령 도전이 사실상 무위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프랑스 등 EU 내 강대국은 물론, 중소 규모 국가들마저 일제히 '블레어 불가론'을 내세우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29~30일 EU 정상회의에서 블레어의 EU 대통령 도전을 탐탁지 않아 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물론 줄곧 지지의사를 밝혀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마저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독일과 프랑스 양국은 EU 내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EU의 사실상 최대 주주 역할을 하고 있어 두 나라 정상들의 지지가 없다면 유럽연합의 초대 통합 대통령에 오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유럽의 다른 중소국가 정상들 역시 이번 회의에서 블레어에 대한 반대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표명해 블레어의 EU 대통령 '꿈'에 그늘을 드리웠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31일 메르켈 총리가 29일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소규모 국가들에서 EU의 첫 대통령이 배출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혀 블레어를 사실상 유력 후보군에서 제외해 버렸다고 보도했다.
사르코지 대통령 역시 이틀간의 정상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첫 라운드에 거론된 이름들이 반드시 마지막 라운드의 승자가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해, 블레어를 지지해온 자신의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견해를 비쳤다.
두 정상은 이어 누가 되든 프랑스와 독일이 같은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며 블레어가 아닌 다른 후보가 떠오르면 첫 EU 대통령 배출에 양국이 '연합 작전'을 펴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아울러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와 주제 소크라테스 포르투갈 총리도 블레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EU 정상회의에서 표명했고, 자국 총리가 후보로 거론되는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역시 블레어를 지지할 까닭이 없어 보인다.
현재 EU의 대통령 후보로 블레어 전 총리 외에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 파보 리포넨 핀란드 전 총리, 헤르만 반 롬푸이 벨기에 총리, 얀 페터 발케넨데 네덜란드 총리, 프레드릭 라인펠트 스웨덴 총리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FT에 따르면 이 가운데 대통령직 제안이 들어오면 수락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들은 융커 총리와 리포넨 전 총리 등 2명이다. 나머지는 국내정치 상황 때문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현 EU이사회 순번의장국 대표인 라인펠트 스웨덴 총리는 EU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내년 11월 19일 스웨덴 총선이 있는데 이 선거를 놓치고 싶지 않다"며 국내 정치 쪽에 우선순위를 뒀다.
EU 관계자들은 일부 회원국 정부가 벨기에의 롬푸이 총리를 매력적인 후보로 여기고 있지만, 벨기에의 계속되는 정국 불안정 탓에 그가 현 총리직을 관두고 EU 대통령 지명전에 뛰어들 수 있을지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네덜란드 역시 자국 내 정치인들이 발키넨데 총리의 EU 대통령 도전으로 조기 총선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을 매우 꺼리고 있다.
이에 따라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와 파보 전 핀란드 총리가 낙마 가능성이 큰 블레어 다음의 유력 주자 군으로 분류되나,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블레어 카드를 버린 독일과 프랑스 양국 정상이 누구를 선택할지에 유럽 국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U는 다음 달 10일 또는 12일께 다시 정상회의를 열어 EU 초대 대통령직 선출을 본격 논의할 계획이다.
김용래 기자 yongla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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