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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블로그] 스웨덴에는 토익, 토플이 없다.

등록 2009-11-02 14:38

이 곳에 오기전 나는 수입없는 스웨덴 생활에 대비하기 위해 가능한 많이 일을하고 저축했다. 내 수입의 대부분은 바로 '영어과외.' 대학생으로써 단기간에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난 교환학생 경험도 있었고, 전공도 같아 학부모님들께 인기를 좀 얻었던 것 같다.

입시 준비하는 보통 중,고등학생들 부터 미국에서 막 도착한 귀국학생들 영어관리, 어른들 문법과외도 해 보았다. 처음에는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내 과외실력은 전공과 경험이 맞물려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와함께 수입도 늘어나 참으로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곳에 온 후, 난 왠지 내 스폐셜티(specialty)를 잃은 것 같은 허탈감에 시달려야 했다. 죽어라 4년간 공부한 내 지식과 결과물이 스웨덴 사람들에겐 그다지 big deal이 아니었던 것. 누구나 영어를 하는 이 곳 사람들은 한국사람들과는 달리 내 영어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즉, 한국에서의 내 생계수단이 여기서 소용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 이 개국어를 하는 바일링규어(bilingual)이다. 혹은 그 이상...

처음 이 곳에 도착해서 배는 고픈데 집에 먹을 것이 없어 맥도날드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눈치만 보다가 내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Do you speak English?"라고 운을 띄우자, 카운터에 있던 고등학생이 "What do you want?"라며 미소로 답을 해주었다. 뭐 젊은 애들이니까 잘하나보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관에서 옆 집 할머니를 만나 영어로 인사를 하니 그냥 영어로 언제 이사를 왔니, 여기서 뭐하니 등등의 안부를 묻다가 헤어질 때서야 "근데 우리가 왜 영어로 대화하지? 너 외국인이니?"하고 물어보았다.

젊은이들은 꽤나 유창한 영어를 하고, 나이 드신 분들도 영어로 기본적인 대화는 가능하다. 우리가 그토록 목을 매는, 한국 부모들이 아이에게 많은 돈을 들여 열성을 다해 가르치는 영어가 왜 여기서는 그냥 '누구나 다 하는', '특별할 것 없는' 것인 걸까? 내 전공이 이 분야인 만큼 나는 날마다 그 이유를 찾아보고 있다.우선 이 곳에 한국에 팽배한 영어과외니 사설 학원이 거의 없으니 그 이유가 더더욱 미스테리했다.

우선 추측1. 스웨덴어나 영어나 모두 Germanic 언어니까 그렇지! 스웨덴어가 영어와 같은 언어군이니 영어를 배우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몇 가지 다른 문법사항은 있지만,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를 이들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이다. '그래, 그러니까 너네가 우리보다 영어를 잘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기분은 좀 더 나아진다. 그런데, 그렇게 인정해 버리면 '왜 독일인들은 영어를 못 할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독일어도 영어랑 비슷한 걸?!

추측2. 미국 티비쇼를 안방에서 보니까. 내가 스웨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대부분은 ".....내가 .....어떻게 영어를 배웠냐고?....그냥 처음부터 했는데....아! 아마도 나 미국 티비를 너무 많이 봐서 그냥 습득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렇다. 스웨덴티비에서 스웨덴 티비쇼를 보는 일은 너무나 힘들다. (물론 나에겐 너무나 좋은 일이지만) 티비만 틀면 하루종일 미국 티비쇼 "가쉽걸" "타이라뱅크스쇼" 등등이 공중파에서 쏟아져 나온다. 우리나라나 프랑스, 독일의 공중파는 미국 티비쇼를 내 보낼때 더빙을 하는 반면, 이 곳은 그냥 자막으로 대신한다. 잘 이해가 안되신다면, 최고의 금전적 이익을 노리는 티비광고가 자막도 없이 그냥 영어로 나온다는 것을 예로 삼으시면 되겠다. 하루종일 영어를 들으니 어느순간부터 스웨덴어 자막을 읽는 것 조차 귀찮아졌고, 그냥 영어가 자신의 제2 국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뭐..내가 좋아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영어배우는데 이 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나도 미드를 보면서 더 많은 영어표현에 익숙해지고, 공부하는지도 모르게 영어공부를 했던 것은 사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학부모님, 이 방법은 자신의 자녀교육 철학에 반하지는 않는가 곰곰히 생각해보시고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마냥 영어교육을 위해 자녀에게 미국 티비만을 보여주다가, 부모님과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미국인'자녀를 가지실 수도 있으니!)


추측 3. 그럼 집에 티비가 없는 사람들은 왜 영어를 하는가? 결국은 성공적인 학교교육! 드디어 진짜 이유를 찾는데 근접한 것 같다. 바로 성공적인 스웨덴 영어 공교육이다. 스웨덴 뿐 아니라 이 곳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영어교육에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요즘 한국에서 조명받는 핀란드가 그러하다. 핀란드어는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덴마크어와는 다른 어족으로 분류되기 되는데, 영어와 비슷하지도 않은 모국어를 가진 핀란드사람들도 영어는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결국 이들의 모국어가 영어와 비슷해서 영어를 잘 한다기 보단, 좋은 영어교육 덕분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그렇다면 스웨덴 영어 공교육, 무엇이 그렇게 특별할까? 솔직히 이 것은 내가 공부할 분야이기 때문에 지금 이렇다, 저렇다 전문가처럼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공립 학교의 영어교사의 수준이 대단히 높고, 학교에서의 '모든 영어수업은 영어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 그렇다고 영어 몰입교육처럼 다른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어수업만은 확실히 더 나은 영어를 배우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아! 직접가서 보고 싶어라!기회가 되면 다음에 더 자새히 적어보겠습니다)

이들의 성공적인 영어 공교육, 그 결과는?

결과 1.국민의 돈, 노력,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점. 아직 대학생인 내 한국 친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가장 돈과 노력을 많이 들이는 것은 바로 '영어회화', '토익', '토플'이다. 어학연수는 이제 모두가 한 번쯤은 다녀오니 토익점수 커트라인은 점점 더 높아지고, 불안감에 많은 돈을 들여 학원을 다녀야 하고, 스터디를 하고, 시험을 봐야 한다. 대학생 학원비가 한 달에 30만원 이상 든 다고 들었던 것 같다. 행여나 외국에서 석사를 계획한다면 '토플'을 봐야하는데, 토플학원은 토익 보다 훨씬 더 비싸다고 했다.

학원값만 비싼가?응시료도 비싼걸..나도 토플시험을 봤는데 거의 20만원에 육박하는 응시료를 내야 했고, 2년 후 소멸하여 한 번 더 봐야만 했다.(아..배아픈걸..) 하지만 스웨덴에는 토익, 토플이 없다. 토익, 토플만 없냐고? 스웨덴 고등학교에서 영어과목을 이수했다는 졸업장은 까다로운 미국대학도 인정해 주는 걸. 그러니 스웨덴 대학생들, 고등학생들은 미국대학 혹은 영어권 대학, 대학원을 가기 위해 토플시험을 볼 필요도 없고, 취업할 때도 영어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 이들은 토익이나 토플이 뭔지도 모를 뿐 더러, 특별한 뜻이 있지 않는 한, 영어에 돈, 노력,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열정, 노력, 돈은 고스란히 경험과 젊음에게 돌아간다. 자신의 전공분야에 관한 작은 일, 봉사활동, 연애, 취미활동, 여행 등등.

결과 2. 누구나 하는 영어, 특별할 것 없고, 계급을 나누지도 않는다. 영어 공교육 성공의 또 하나의 장점은 '영어 좀 한다'라는 것이 결코 집이 풍족하여 영어 사립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거나, 조기유학을 다녀왔다는 계급의 상징이 되지 못 한다는 것이다. 대학교수도, 버스운전수도, 슈퍼의 캐쉬어도, 옆집 할머니도 하는 영어는 이들에게 특별하지도 않고, 자랑할 거리도, 자신의 계급적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지 못한다.

물론 개인의 직업분야나 경험에 따라 유창성의 정도는 달라질 수 있으나, '영어를 말한다는 것'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지난 봄, 교생실습 할 시절, 교내 '영어말하기대회'가 영어권 국가에서 얼마간 살다 온 학생들만의 잔치가 되었던 것, 그들이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각 학급에서 엘리트로 취급되고 타 학생들이 스스로 작아지는 것을 목격한 내게 이들이 갖고 있는 영어에 대한 평등한 시선이 매우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내 스스로가 한국의 중,고등학교 영어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대학시절에는 영어과외로 수입을 올려 이 곳에 왔는데 이 곳의 영어교육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내 스스로 한국 영어공교육의 한계를 체감했기에 스스로 더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 한국의영어공교육이 어떻게 하면 이들 북유럽 국가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내 숙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곧 그저 영어를 잘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넘어서 젊은 대학생들에겐 많은 기회비용을 벌어주고, 어린 학생들에겐 평등감과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주는 일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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