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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블로그] 스웨덴 젊은 남자들의 고민

등록 2009-11-13 11:04

얼마전 친구의 남자친구로부터 기가막히는 소리를 들었다. 요즘 스웨덴 젊은 남자들의 최대의 불안은 '임신한 여자친구가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 이야말로 내가 자란 사회와는 너무 나도 다른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보아의 노래처럼 'Girls on top' 아닌가!

어렸을 때 부터 엄마가 즐겨보던 주말드라마를 보며 자란 나는 '여자는 남자에게 버림받기 쉬운 약한 존재'라는 암기식 교육을 받고 자란 것 같다. 가장 충격적이였던 드라마는 (혹은 딸가진 엄마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교육 드라마) KBS에서 했던 '젊은이의 양지'였다.

사랑밖에 모르던 여자주인공 하희라는 남자주인공 이종원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받쳐 헌신적으로 그의 출세를 도왔지만, 성공한 남자는 부잣집 딸에게 돌아서 버리고 임신까지한 하희라는 버림받는다는 이야기. 며칠을 울다 아이를 지키기고 복수하리라 다짐한 하희라가 밥을 꾸역꾸역 먹던 장면이 아직도 떠오른다.

당시 나는 고작 초등학교 1,2학년 이였는데 이렇게 상세히 기억하는거 보면, 이 드라마 나한테 꽤나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어린 내가 배운 교훈은? "네 남자, 언제든 널 떠날 수 있다. 조심해라!"

비단 드라마뿐이 아니었다. 대학가서 연애하고, 또 친구들 연애하는 걸 보며 이런 패턴이 실제 우리삶에 꽤나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친구들 남자친구들, 처음에는 다들 여친들에게 쩔쩔매다가 사귄기간이 오래될 수록 (흔한 말로)'변해간다'는 소리 많이도 들었다. 더구나 여친의 나이가 들어가면 여자쪽 가족 전체가 쩔쩔매고 남자쪽의 배짱은 늘어만 간다지.

하지만 스웨덴에는 이와 반대의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니! (이 이야기를 들으며 알싸한 기분과 함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여자친구가 떠날까봐 남자들이 항상 전전긍긍하는 사회. 둘 사이의 사랑의 결실인 아이가 없다면 쿨하게 헤어지겠지만, 아이가 있다면 남자가 약자가 되는, 우리와는 정 반대의 시스템

이 이야기를 처음 꺼낸 친구의 남자친구는 자기가 이런 경우를 너무 많이 목격해서 정착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여자를 믿기 힘들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야기인즉, 젊은 스웨덴 여자들이 나이가 차기전에 건강한 아이를 갖기 원하고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아이를 갖지만, 새로운 사랑을 만나거나 사랑이 식으면 아이아빠인 남자친구를 차버린다는 것. (물론 우리나라 모든 남자들이 드라마처럼 바람피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스웨덴 여자들이 이런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와 정반대의 생각이 퍼져있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

물론 아이아빠는 아이 교섭권도 있고 양육비도 대지만 대부분의 스웨덴 법원은 커플이 헤어질 때 큰 문제가 없는한 엄마가 아이를 양육하도록 하기에 여자입장에서는 꼴보기 싫은 사람과 인생낭비할 것 없다는 것. 또한 아마도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지 않은 사회분위기와 자유로운 노동시간 조절이 가능한 것도 이같은 사회조류를 만드는데 한 몫 할 것이다.


더 쇼킹한 것! 스웨덴에는 Sambo라는 커플 동거형태가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그 수도 아주 많다. 결혼을 거부하는 커플들도 많고, 결혼 전에 함께 살아보고자 하는 커플들도 많아서 일텐데, 이 경우에 커플들은 아이에게 엄마성, 아빠성 중 어느것을 줄지 합의한다는 것. 위에서 언급한 친구의 남자친구도 (30년을 함께산 sambo동거)부모님이 혹시나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고 나중의 편리함을 위해 엄마성을 주었다고 했다. (두 분이 헤어져 아이가 엄마와 함께 살 때, 엄마쪽 성을 따르는 것이 쉬울 테니까)

눈이 휘둥그래진 나에게 '이런 경우 처음봤어?'라며 더 놀랜 표정을 지어주기도. 한국에서 꽤나 젊은 생각을 가졌다는 나, 그 자리에서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아이아빠와 평생 함께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다른 남자 만나도 다 똑같을텐데..."라고 말했다가 '할머니'라는 한 소리 듣고 자리를 떠야했다. 아직도 배울게 너무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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