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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블로그] 장애인 많은 나라, 독일

등록 2009-11-24 14:33

며칠 전 시내에 나가려고 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더니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버스 안도 정류장도 한산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보니 지팡이를 든 여성이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걸음을 잘 걷지 못해서 한 계단 높이의 버스에 오르는 일도 매우 힘겨워 보였다. 버스기사는 이 여성이 올라타고 나서도 빈 자리를 찾아 앉을 때까지 백미러로 지켜보다가 비로소 차를 출발시켰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남편은 '그게 뭐?'라는 표정으로 나를 멀뚱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원래 버스기사들 다 그래, 라고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를 던졌다. 독일 버스기사들은 다 그런 걸 나도 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여전히 그런 모습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리고 볼 때마다 남편에게 '독일에는 장애인도 참 많다'고 말하곤 한다.

정확히 말하면 '거리에 장애인이 많다'. 지팡이를 짚고도, 혹은 휠체어를 타고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도록 편의시설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은 말할 것도 없다. 독일 전역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는 뒤쪽 입구가 넓고 휠체어용 장치도 되어 있다. 휠체어 넓이의 판이 버스 바닥에서 나와 다리처럼 보도에 놓이도록 하는 장치가 있다. 간혹 수동도 있는데 이때는 버스기사가 내려서 도와준다.

언젠가 한국에서 휠체어 생활을 한다는 어느 장애우의 글을 읽었다. 외출했다가 택시를 타고 귀가하려는데 택시기사가 짜증스럽게 던지더라는 말. "몸도 성치 않으면서 집에나 있지 왜 나돌아다녀!" 사정이 이러니 장애인들이 버스 타고 다닌다는 말을 이분은 믿을 수나 있을까?

버스뿐이 아니다. 우리 아랫집 사는 아저씨는 중풍으로 신체 한쪽이 마비되었다. 심하게 다리를 절지만 휠체어가 필요한 정도도 아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이분은 장애인 등록이 되어 무료로 기차를 타고 독일 전역을 여행할 수 있다고 한다. 단, 혼자서 외출하면 안 되고 항상 보조자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보조자까지 요금이 공짜다.

어제는 남편과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번화한 중심가의 보도에 휠체어 한 대가 덩그러니 서 있는 걸 봤다. 누가 휠체어를 이런 데다 내놨나 하고 봤더니 커다란 사진이 실린 신문기사가 등받이에 붙어 있다. 하이델베르크 시가 장애인을 찬 길바닥에 떨도록 놔둔다는 것이다. 이걸 개선하라고 장애인들이 모여 시위를 한 모양이었다.

문제는 구형 시가전차였다. 구형 전차는 폭이 좁고 입구도 매우 좁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시가전차 운전자들도 어쩔 수 없이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추운 겨울이나 비바람이 치는 날, 휠체어를 탄 사람은 다음 전차는 신형이기를 바라며 10분이나 20분을 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요즘은 그나마 입구 높이가 정류장 플랫폼 높이와 비슷하고 폭도 넓은 신형으로 많이 대체됐지만 멀쩡한 구형 전차들을 다 폐기처분할 수는 없으니 그대로 운행하고 있다. 교체에 들어가는 예산도 막대할 테니 장애인들은 나라에서 책임을 지라고 반발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한꺼번에 다 바꾸진 못하더라도 한 대 한 대 바꿔 나갈 것 같다.(구형 전차는 아마도 동유럽으로 수출되지 않을까 싶다.)

완벽주의 독일이라도 이렇게 아직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런데 적어도 장애인들이 권리요구를 하며 시위할 때 눈총을 던지는 사람은 없다. 남편처럼 다수의 시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지지의 눈빛을 던질 것이라 생각한다.


간혹 같은 수업을 듣던 장애학우가 한 명 있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학우였다. 글씨를 쓰기는커녕 말할 때 발음도 분명하지 않고 목도 잘 가누지 못할 정도로 장애가 심해서 이 학우의 곁에는 항상 누군가 붙어 있었다. 학생인지 자원봉사자인지 복지사인지는 잘 모르겠고, 여하간 같은 과 학생은 아니었다(아마 자원봉사자이거나, 아니면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인력이 아닐까 싶다). 이 보조자가 세미나 내내 곁에서 책도 펼쳐 주고 필기도 해 주고 수업이 끝나면 장소를 옮기는 일도 도와줬다.

북적대는 강의실에는 '몸이 저리 성치 못해서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라는 눈빛을 보내는 이 하나 없었다. 나 혼자만 쳐다봤다. 장애우 학생뿐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보조자,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고 도와 주는 주위 사람들을 보며 촌스럽게 감탄했다. 정작 그들이 감탄하는 나를 보았다면 며칠 전 남편이 그랬듯이 도리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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