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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블로그] 한국인 입양인들을 향한 부족하기만 한 내 마음

등록 2009-11-24 14:37

길고 어두운 스웨덴 밤을 이겨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마침 복싱 수업이 있어 참가하게 되었고, 한 시간여 동안 함께 땀흘리고 치고 받으며 내 또래의 스웨덴 여자애와 통성명도 하게 되었다.

"어디서 왔어?" "나? 한국" "아, 정말? 내 룸메이트 두 명 모두 한국인인데" "정말? 여기서 공부하는 애들이야?" "아니.. 어렸을 때 입양된 사람들" 순간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당황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 중 하나는 "요 계집애, 어엿히 스웨덴 주권을 가진입양인들을 아직도 한국인으로 분류하고 스웨덴인으로 안 받아주는구나"하는 자격없는 실망과 책망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장 큰 생각-는 "알 수 없는, 근본적인 미안함과 죄책감 혹은 면목없음"이었다. (내가 직접 그들을 만난것 도 아닌데) 한국 안에 있을 때는 해외입양인들에 대해 머리로 알고만 있을 뿐,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해외에 들락거리고 생활을 하면서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난 한국 입양인들을 만나거나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서야 비로서 나는 그들을 향한 내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과 내가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게되었다. 아마 과거의 나처럼 한국 안에서만 해외입양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거나 아직 직접 만나볼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분들은 어쩌면 아직도 입양인들을 그저 '안타까운 사정으로 이미 멀리 떠나버린 사람들'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만난 분들은 여전히 자신을 한국인으로 여기고, 한국인이라는 나를 보고 반가워 해 주었다.

파리에서 생일파티를 하러 나이트클럽을 갔을 때, 내가 가져간 여권을 보고 신이나서 말을 걸고 더 좋은 테이블로 안내해 주시던 '한국어를 전혀 못 하던, 프랑스어만 해서 미안하다던' 스태프도 한국인 입양인이였고, 스웨덴에서 활발히 한국커뮤니티에 속해 한국어도 가르치시고 입양인 협회 운영을 하시는 분도 한국인 입양인이였다. 그는 아직 벌이가 없어 교통비가 내 생활비의 절반을 차지해 한국어학교에서 봉사를 못 하겠다는 나를 이해해 주시고, 스웨덴에 잘 적응하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어떠한 사정이였든 고국을 떠나 자라난 분들은 아직도 한국을 자신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나를 반가워 해주시는데, 오히려 나는 그들이 입양인임을 알게 될 때마다 반가운 표정을 지어줘야하는지 미안한 표정을 지어줘야하는지, 쿨하게 '그래?'하고 넘어가줘야하는지 모르겠어서 어정쩡한 대답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리고 하루 정도는 마음이 불편했다. 불안정했던 내 표정이나 태도가 혹시나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되었고, 아무리 좋은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받고 풍족하게 자랐어도 모습이 다르기에 느껴야했던 정체성의 혼란은 없었을까 마음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지구 반대편에서 자라난 우리가 성인이 되어 작은 인연으로나마 엮일 수 있는 것었던 것은 그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아서였지 결코 내가 그들을 찾아서가 아니였으니까. 그들이 '너 한국인이야?'하고 반가워해 주지 않았다면, 난 그저 '한 명의 아시안'으로 생각하고 지나갔을 테니까. 그들이 입양인협회를 만들어 모임을 갖지 않았다면, 주말 한글학교를 만들지 않았다면 나도 그들을 찾지 못 했을 테니까.

내가 그런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은 한국과의 가교역할을 해주는 것 뿐일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곳에 오기전 '외국어로서 한국어교사자격증'을 이수했는데, 스웨덴이란 나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내게 너무 먼 (봉사로만 이루어지는) 단 두 곳의 한글학교와 스톡홀름 대학 뿐이다.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부터 일본어, 중국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거의 모든 나라의 언어를 가르치는 전국 방방 곳곳에 위치한 국립 커뮤니티칼리지에도 한국어강좌는 없었다. 분명 이 곳에 한국인 입양인들이 사는 것은 아는데, 어쩌면 그들은 한국과의 소통에 목말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내일 학교에 노트를 붙이기로 했다. 한국어-스웨덴어 언어교환을 원한다는 노트. 내 작은 메세지가 단 하나의 인연만을 알게되어도 좋을 것 같고, 내가 할 줄아는 단 하나의 스킬을 살려 한국어반을 운영하게 된다면 더 없이 의미있게 행복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한국인이기에 숙명적으로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만 덜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런 나의 작은 제스처 하나가 언젠가는 우리정부차원에서 입양인들에게 다시금 손을 내밀고 그들을 가슴으로 받아주는 작은 제도라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겠지 싶다. (한국어선생님과 입양인들을 엮어주는 프로그램일지라도!) 모두들 행운을 빌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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