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청에서 남편 앞으로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남편은 열어보지도 않고 '30유로'란다.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하는 내게 설명하기를, 남편이 구직자로 등록되어 있던 11월 한 달 동안 여기저기 보낸 지원서에 대한 비용을 신청했다고 한다. 한 통당 5유로가 든 걸로 계산해 여섯 군데 지원했으니 30유로를 내놓으라고 노동청에 요구했고, 코웃음 칠 법도 한 노동청은 그걸 또 기꺼이 돌려준다고 답장을 한 것이다.
겨우 여섯 군데 지원해서 취직했으면 그걸로도 감사할 일인데 취업에 든 비용을, 그것도 몇백유로도 아니고 30유로를 돌려달라니, 내 남편이지만 참 구두쇠다. 스크루지 뺨친다고 놀려대는 나를 보고 남편이 정색을 했다. 당당히 취직해서 실업률 낮추는 데 보탬이 된 것만도 나라에서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이 넘쳐나는 판에 그까짓 30유로가 문제겠냐고 큰소리를 친다. 얼마나 고마워하는지는 남편을 고용한 기업에 노동청이 첫 3개월 월급의 30%를 지불하기로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자리 내놓으라고 몰려드는 사람들 중 하나라도 덜어 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이다.
30유로 돌려받은 것도 모자라서 남편은 이 30%지원금을 교묘히 활용할 계획이다. 남편이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회사에서는 그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터였다. 그러니 개인 돈으로 사야 하는 월 정기 교통카드를 그 돈으로 내 달라고 이미 회사에 요구했고, 사장에게 그러겠다고 약속을 받아 놓은 상태이다. 최근에는 그 계획을 바꾸어 교통카드 값은 됐으니 대신에 며칠 법정 외 휴가를 달라고 협의할까도 고려중이다.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기간에 남편이 전공한 학부 실험실의 샘플 분석 일을 하기 위해서다.(졸업하고 취직하기까지의 두어 달 동안 이 일을 했는데 전공지식 쌓는 데도 도움이 될 뿐더러 수입이 꽤 괜찮았다.)
입사한지도 얼마 안 되는데 회사에 안 좋은 인상을 주지 않겠냐고 걱정하자 남편은 단호히 '나인(Nein)'이라고 대꾸했다. 자신이 충분히 그 정도를 요구할 입지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정말로 자린고비에 철면피인 것은 아니다. 평소 성격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다만 독일인들은 일반적으로 '내가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다. 국가에 대해서라면 특히 심하다.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서라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사회주의적이란 말은 정치 이데올로기라기보다 '사회 구성원에 대한 사회의 책임'이 제도화되어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학생들이 국가에 '용돈 지원'을 받거나(실제로 대학생들은 가정형편에 따라 100~200유로, 혹은 그 이상의 용돈을 매월 지원받는다. 졸업 후에 이 중에서 절반만 갚으면 된다), '고작' 500유로 하는 등록금에 반발해 '교육받을 권리를 팝니다' '엘리트를 팝니다'라고 빈정대는 문구로 캠퍼스를 온통 물들여놓는 것도 이런 사고방식 때문이다. 자녀가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매월 기십만원씩 양육비를 지원받는 부모들이 '실제 양육에 들어가는 돈을 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항의할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에는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전문가까지 모셔다 놓고 한 아이당 필요한 최소 양육비를 산출해가며 국가지원비가 그 절반도 못 미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가정형편이 윤택하지 못한 아이들은 스포츠 클럽에도 들지 못하며,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움츠러들어 결과적으로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확대하면 국가가 사회 부적응자를 양산한다는 논리였다.
결국은 국가의 책임이다. 나라가 기반을 다져 주지 못하니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 드는 것도 당연하다고 독일인들은 생각한다. 세상 어디에는 등록금 도입에 반대해 평화 시위에 나서는 고등학생들이 있고, 어디에는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엘리트' 타이틀 하나 따기 위해 꺼이꺼이 대학에 가야 하는 학생들이 있다. 취업을 하려면 '무엇을 배웠나'보다 '어느 대학을 나왔나'가 우선이고 학급에서 대놓고 부모 학력조사를 하는 나라니,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 때문에 고생하는 학생들을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등록금 비싸다고 반발하고 안 가봤자 그 자리 채워줄 부잣집 자제분들은 얼마든 있으니 자기만 손해다. 비싸면 빚 내서 다니면 된다는 것이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다. 하긴 낙태 엄금을 출산율 감소 대책으로 내놓는 정부이니 뭘 더 기대하겠냐마는.
국민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 권리를 요구하니, 서유럽 복지국가의 국민들이 점점 더 안일하게 나라에만 의존한다는 비판도 있다. 일부를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연대의식이 있는 만큼 일반적으로 책임에 대한 인식도 강하다. 나라가 교육정책은 나 몰라라 하고 금융구제에만 돈을 쏟아붓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독일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부자세'를 내겠다고 나선 기사가 올라왔었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표정이었다. 수 년 동안 자발적으로 이웃 독거노인들을 돌보아 온 시어머니 역시 '이게 사회에서의 내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연금재정은 점점 바닥나는데 정치가들은 유권자의 입에 꿀이나 처바르며 비위맞추기 바쁘다고, 이런 상황에서는 개개인의 사회 기여가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어머니의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정정해서 돌봐드릴 필요가 없었으니, 그때 안한 것을 지금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다.(당시 몸이 좋지 않았던 시어머니가 잠도 못 자고 노인분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왜 그렇게 무리하시냐고 한 마디 한 적이 있었다.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나는 한 시간 동안 연대의식과 사회 구성원의 책임에 대해 일장연설을 들어야 했다.) 나는 학생 신분으로 세금도 안 내면서도 독일국민과 똑같은 혜택만 받으며 살았다. 수 년 공부하는 동안 독일 학생들과 똑같이 등록금도 안 냈다. 등록금이 도입된 지금도 자녀가 있는 학생들은 아이가 열네 살 될 때까지 또 등록금 면제다. 결혼하고서는 아이 낳겠다고 산부인과에 다니며 검사비 한 번도 낸 일이 없고, 보통은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약도 산부인과에서는 공짜로 처방해 주었다.(그래도 독일 여성들은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데, 그렇잖아도 출산율 감소 문제가 심각한 한국의 산모들이 매번 검사비나 초음파비 몇 만원, 출산시에 수십 만원에서 수백 만원까지 드는 병원비를 개인부담해야 하는 데는 대책이 필요하지 싶다.) 독일에 와서 '요구할 권리'를 부여받은 내가, 시어머니처럼 받은 것을 향후 '사회에 되돌려줄 의무'까지 잘 이행하게 될까?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에서도 국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을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나아가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인식할 날도. 제레미 리프킨이 '유러피안 드림'의 서문에서 피력한 미국과 유럽의 차이점도 바로 이 점이었다.
국민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 권리를 요구하니, 서유럽 복지국가의 국민들이 점점 더 안일하게 나라에만 의존한다는 비판도 있다. 일부를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연대의식이 있는 만큼 일반적으로 책임에 대한 인식도 강하다. 나라가 교육정책은 나 몰라라 하고 금융구제에만 돈을 쏟아붓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독일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부자세'를 내겠다고 나선 기사가 올라왔었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표정이었다. 수 년 동안 자발적으로 이웃 독거노인들을 돌보아 온 시어머니 역시 '이게 사회에서의 내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연금재정은 점점 바닥나는데 정치가들은 유권자의 입에 꿀이나 처바르며 비위맞추기 바쁘다고, 이런 상황에서는 개개인의 사회 기여가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어머니의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정정해서 돌봐드릴 필요가 없었으니, 그때 안한 것을 지금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다.(당시 몸이 좋지 않았던 시어머니가 잠도 못 자고 노인분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왜 그렇게 무리하시냐고 한 마디 한 적이 있었다.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나는 한 시간 동안 연대의식과 사회 구성원의 책임에 대해 일장연설을 들어야 했다.) 나는 학생 신분으로 세금도 안 내면서도 독일국민과 똑같은 혜택만 받으며 살았다. 수 년 공부하는 동안 독일 학생들과 똑같이 등록금도 안 냈다. 등록금이 도입된 지금도 자녀가 있는 학생들은 아이가 열네 살 될 때까지 또 등록금 면제다. 결혼하고서는 아이 낳겠다고 산부인과에 다니며 검사비 한 번도 낸 일이 없고, 보통은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약도 산부인과에서는 공짜로 처방해 주었다.(그래도 독일 여성들은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데, 그렇잖아도 출산율 감소 문제가 심각한 한국의 산모들이 매번 검사비나 초음파비 몇 만원, 출산시에 수십 만원에서 수백 만원까지 드는 병원비를 개인부담해야 하는 데는 대책이 필요하지 싶다.) 독일에 와서 '요구할 권리'를 부여받은 내가, 시어머니처럼 받은 것을 향후 '사회에 되돌려줄 의무'까지 잘 이행하게 될까?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에서도 국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을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나아가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인식할 날도. 제레미 리프킨이 '유러피안 드림'의 서문에서 피력한 미국과 유럽의 차이점도 바로 이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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