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런던 유로스타 기차 4대 잇단 고장
밀실공포·기절사태…전자장비 이상 추정
밀실공포·기절사태…전자장비 이상 추정
리 갓프리는 프랑스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달콤한 추억은 프랑스를 떠나 집이 있는 영국을 잇는 해저터널에서 18일 밤 영화속 끔찍한 악몽으로 변했다.
파리를 출발해 런던으로 달리던 유로스타 열차 4대가 해저터널에서 잇따라 고장으로 멈춰서, 승객 약 2천명이 최장 16시간 가까이 열차에 갇힌 채 밤을 보냈다. 일부 조명이 꺼지고 물과 음식 등이 부족한 상태에서 몇몇 승객은 밀실공포증을 겪고 기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20일 전했다. 임산부와 휠체어를 탄 장애인,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 등은 영화속 한장면처럼 공포에 휩싸였다. 갓프리는 “악몽 그 자체였다”고 <비비시>(BBC) 방송에 털어놨다. 승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고장난 4대의 열차 가운데 2대에 탄 승객들은 다른 열차가 와서 옮겨탔고, 나머지 2대는 승객을 태운 채 다른 예비 기관차에 의해 밀려나왔다. 구조과정에서 일부 승객은 짐을 든 채 터널 속에서 약 1.6km를 걸어나와 다른 열차로 이동하기도 했다.
유로스타 쪽은 20일까지 열차운행을 전면 중단하고 사고원인 파악에 나섰다. 현재까지는 프랑스 북부의 맹추위 속을 달리던 열차가 갑자기 따뜻한 해저터널로 들어서면서 전자장비에 이상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로스타 쪽은 터널에 갇혔던 승객들에게 환불은 물론 1인당 150파운드(약 29만원) 상당을 보상하고, 돌아가는 차표도 무료로 제공했다. 리처드 브라운 유로스타 최고경영자는 승객들에게 사과했다.
영국 남동부 켄트와 프랑스 북동부 칼레를 잇는 50㎞ 터널은 1994년 개통됐으며 38km가 해저구간이다. 시속 300㎞로 달리는 고속 열차인 유로스타는 런던과 파리를 2시간 15분에 연결한다. 2008년 9월 열차가 터널 안으로 진입하면서 화재가 발생해, 이틀간 운행이 전면중단된 바 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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