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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블로그] 독일 연방제의 폐해

등록 2010-01-07 16:11

오늘은 공휴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연방주인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공휴일이다. 연방국가인 독일에서는 주마다 공휴일이 조금씩 다르다. 오늘은 성삼왕(Heilige drei Könige, 아기예수가 태어났을 때 경배하러 왔던 세 왕)절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남부에 카톨릭 전통이 강해서 이날도 공휴일로 지정된 것 같다.

이렇듯 남부는 카톨릭, 북부는 개신교의 색이 강하다는 점이 각 지역의 공휴일에도 반영된다. 예컨대 북부에서 공휴일인 루터의 종교혁명 기념일은 남부에서는 공휴일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종교와 관련된 기념일이 많은 남부에 노는 날이 좀더 많은 듯하다.

남편은 가끔 북부의 시댁에 전화해 '여긴 노는 날인데 거긴 아니지?'하고 약을 올린다. 어쨌거나 오늘은 틀림없이 공휴일인데 남편은 출근을 했다. 사실 남편도 오늘이 공휴일이라는 것만 생각하다가 하마터면 무단결근할 뻔했다. 어제 회사에 갔다가 이 공휴일이 남편 회사에는 해당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사연인즉 하이델베르크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인데 남편의 회사가 있는 이웃 도시 루트빅스하펜은 라인란트-팔츠 주에 속하기 때문에 거기서는 빨간날이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신년 연휴 지난지 삼일만에 또 하루 쉰다는 남편의 기쁨은 무참히 깨져 버렸다.

재미있는 건, 루트빅스하펜은 라인강을 경계로 만하임이라는 도시와 딱 붙어 있는데 만하임도 바덴-뷔르템베르크주라는 사실이다. 다리 하나 사이에 두고 누구는 노는데 누구는 일해야 한다니. 상점도 이쪽에서는 열고 저쪽에서는 휴업이다. 만하임에 사는 사람이 오늘 장을 보고 싶으면 다리 건너 루트빅스하펜으로 가면 된다.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광대한 나라도 아니면서, 독일도 나름 연방국가라고 가끔은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넥카강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강의 남쪽 기슭에 큰 마을이 하나 있는데, 불행히도 이 마을 주민들은 강을 건너려면 멀리 떨어진 다리까지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주민 수도 무척 많은 터라 마을 앞에 다리 하나쯤 지어도 될 법한데 그런 일은 아마도 독일 연방제가 없어질 때까지 생기지 않을 듯싶다. 이유인즉 이 지점만 두고 보면 넥카강 이남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이고 강 이북은 헤센 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우리 예산 들여서 남 좋은 일 시킬 일 있냐는 생각 때문에 서로 기싸움만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쪽은 주민들이다. 지역주의의 독일 버전이라고 할까? 독일인들이 겉으로 보면 참 대동단결을 잘 하는 것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별로 그렇지 않다. 연방주 간의 신경전도 그렇고, 심지어 같은 주 내에서도 '코뮌'이라고 부르는 각 자치구 사이에 경계도 뚜렷하고 자부심도 뚜렷하다.

예전에 살던 프라이부르크 부근에는 동네마다 나름의 사투리가 있을 정도였다. 하긴 근세까지만 해도 각 영지 간의 경계가 확고해서 당시의 독일 지도는 누덕누덕 기운 천조각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독일을 여행하던 괴테도 수 킬로미터마다 통행세를 내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단다. 이렇게 수백 년 동안 우리 동네 담쌓기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아직까지도 쉽사리 정신적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모양이다.(물론 단일국가 독일이 두 차례나 전쟁을 일으키는 걸 보고 기겁한 연합국들의 견제도 독일이 연방국가가 되는 데 한몫했다.)

남편은 저녁 식사거리로 필요한 것 있으면 루트빅스하펜에서 장을 봐 오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출근했다. 항상 기차로 통근하는데 오늘은 이 동네에만 공휴일 열차시각표가 적용돼서 출근시간 맞추기도 불편하다고 투덜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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