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일에 수상 카라만린스 (Kostas Karamanlis)는 사임을 발표했고, 조기 선거를 향한 길을 열었다. 유럽연합의 다른 지역보다 더 강하게 경제적 위기를 맞았고, 실업의 증가와 부패, 클리엔털리즘 (친분관계와 정치적 후원)의 스캔들은 우파인 “새로운 민주주의 (New Democracy)” 당의 지도자로 하여금 수건을 던지게 했다. 유럽 기금 덕택에 수년간 약 4%의 성장을 지속한 후, 부채의 증가와 함께 경기 후퇴에서 한 발자국 앞에 이르게 되었다. 최근 12개월 사이에 카라만린스는 여러 차례의 개각을 단행했지만 그리스의 위기는 더욱더 악화되었다. 이 이면에는 이 정부는 국가 부채와 국민총생산간의 관계에 있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3,9 %라고 유럽연합에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12%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9월 2일 아침에 아테네에서는 2개의 강력한 폭파물이 터졌다. 폭발 대책 전문가들은 테러리스트적 행위로 분석하고 있고, “혁명 투쟁” 그룹에 대한 의심을 두고 있다. 이 그룹은 2003년부터 활동을 해오고 있고, 또한 1주일간의 폭력적인 시위를 배가시켰던 그룹으로 알려지고 있다.
10월 4일에 조기 총선거가 있었다. 카라만리스는 2년간의 힘든 노력과 "현실적 프로그램" 에 따라 2011년부터 시작해서 경기 회복을 약속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의 당은 민족주의적 우파쪽으로 표의 이탈을 경계해야만 했다. 이민자에 대한 커지고 있는 그리스인들의 두려움과 불만과 2008년 12월의 젊은층의 폭력적 시위를 선거의 주내용으로 선거민들에게 홍보했다. 반면에 레프트의 범헬레닉 사회당 (Panhellenic socialist Movement)의 파판드레우 (Papandreu)는 노동자와 중간 계급의 어떠한 더 이상의 희생없이 국가를 회생시킬 수있다고 주장하고, 봉급과 펜션을 증가함으로서 소비, 경제와 "녹색 성장"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보장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적어도 40%의 지지가 필요하고 녹색당의 성장을 저지해야만 하는 것이 문제였다.
선거의 결과는 범헬레닉 사회당의 분명한 승리로 나타났다. 이 당은 국회 의석300석 중 160석으로 43,9%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 당의 당수인 파판드레우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사회당을 유산받지 않았다. 그는 사회당을 정복했고 그 당을 개혁하기 위해 그리고 새롭고, 알맞은 제안을 선거민들에게 제시하고자 싸웠다. 그의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 스웨던, 런던, 미국에서 공부했었다 그의 전문적 교육을 정치 운영과 당의 통치에 적용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한 예로, 그는 정치에 피쉬킨 (James Fishkin)의 학문적 이론들을 적용했다: 토의 민주주의 (deliberative democracy). 마로우시 (Marosi) 읍장의 레프트 후보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라이트와 레프트에 관계없이 그 지역에서500명의 시민을 선출해서 패널을 만들어 하루동안 한 장소에서 만나 후보자들에 대한 모든 상세한 정보를 패널에 제공했고 후보자들에 대한 질문, 등을 함으로서 후보자를 결정하는 실험을 했다. 밀리밴트 (David Miliband)는 사회당의 이 실험에 대해 유럽 사회당을 위한 영감의 하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스 민주주의 패러독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리스 정치는 두 가문에 의해 이끌어져왔다. 라이트쪽에서는 카라만리스 가문이고, 레프트쪽에는 파판드레우 가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황하에서 부패와 클리엔텔리즘은 피할 수 없는 악이라는 것이 여러 국가의 역사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비록 파판드레우가 민주주의적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할 지라도.
파판드레우가 직면해야할 진짜 문제는 비참한 그리스 경제이다. 어떤이는 그가 선거에서의 승리는 이것에 비하면 하나의 산보였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스의 부채는 이탈리아다음으로 두번째이만, 그 회복의 전망은 최악이다. 그는 3 백만 유로의 경제적 자극을 위해 약속했다. 문제는 노동자와 중간 계급에 대한 새로운 세금 부과없이 동시에 임금과 펜션을 보장하면서 어디서 그 돈을 찾아낼 수 있는지가 분명하지가 않다.
12월 6일 아테네에서 시위가 있었다. 모두들 폭력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어느 누구도 그것이 얼마나 계속될 것인지는 예견하지를 못했다. 15세인 그리고리포우로스 (Alexandros Grigoripoulos)가 죽은지 정확히 1년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이번 시위는 다소 위험한 질적인 도약을 보여주었다. 시위자들은 대다수가 학생들이었지만 또한 수많은 무정부의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테네 대학으로 들어가서 한 교수를 공격하고 상처를 주었다. 또한 이 시위는 거의 비밀로 해왔던 경제적 위기에 대한 분노였다. 옳지 않은 숫자와 전망적인 성과를 혼합시키면서 정치계급은 경제적 위기를 숨기고자 했다는 것이다.
경제적 위기는 그리스인들의 매일의 생활을 고통스럽게 물고 있다. 해직의 폭풍, 물가의 앙등, 엄격한 조치들이라는 악몽와 함께, 거의 사회적 심근경색를 만들고 있었다. 2008년에 어떤 경제 전문가는 그리스는 매우 건전한 국가로서 어쩌면 이탈리아를 능가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경청되지 않은, 더욱 조심스러운 분석은 그리스의 경제 성장은 단지 하루살이적 성장이라고 경고했다.
그리스 예산안 전문가들이 발표한 국민총생산은 낙관론에 바탕을 둔 계산이었다. 그리스는 건전한 경제 구고즐 가지지 않고 있고, 실질적으로 서비스 산업으로 살아온 국가이다. 관광과 해상 화물은 국가 경제의 기둥으로서, 이 두 기둥에서 빈번하게 적자의 수치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그리스의 경제 상황은 위험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몇몇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이유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할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전 수상 카라만리스는 사임을 했고 조기 선거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문제는 분명하고 탈출할 수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실질적인 거짓말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브뤼셀에 통지한 것처럼 부채와 국민총생산간의 관계는 3,9% 가 아니고, 진짜 계산은3배 이상인 12,9%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바이 (Dubai )이후 그리스의 차례인가? 파이낸셜 타임즈 (Financial Times)에 따르면, 기술적으로 두 상황은 비교될 수 없는 것으로, 그 이유로서 두바이의 위기는 한 국가의 위기가 아니라 국가 소유의 한 회사의 위기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의 개입 가능성은 어떤가? 유럽연합은 현재까지 심하게 개입하기 보다는 그리스가 "실수"를 교정하고 기회적절한 처방을 채택하도록 시간을 갖도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그리스는 모든 조치와 방안을 모색할 것이고 결국에는 유럽연합이 개입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또다른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 부채의 3분의 2는 외국인들의 손에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그리스가 국제적 투기 매매 (speculation)의 공격하에 끝나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견하기가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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