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가이드라인 제정… 법 개정 논란 격화될 듯
다발성경화증으로 점점 몸이 굳어가고 병을 앓고 있는 영국 여성 데비 퍼디(47)는 7년 전 남편이 자신의 안락사를 도와줄 경우 처벌받을지 여부를 분명히 해달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마침내 지난해 법원이 그의 소송을 받아들여 안락사 조력자에 대한 처벌 가이드라인을 새로 마련하도록 검찰에 지시했다. 1년간 영국을 들끓게 한 논란 끝에 25일 발표된 새 가이드라인은, 이제까지 안락사 조력자 범죄 기준의 초점을 바꾼 획기적인 내용으로 평가받는다.
영국에선 앞으로 안락사 조력자에 대한 기소 여부를 판단할 때 ‘조력자의 동기’를 중요한 근거로 삼게 된다. 키어 스타머 검찰총장이 이날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사망자가 자발적이고 명확하고, 정보를 받은 채 결정을 했는지와 조력자의 동기가 전적으로 연민에 의한 것인지”를 법적 기소의 중심근거로 삼도록 했다. 안락사 관련 처벌의 초점이 사망자의 행동이나 상태가 아니라, 조력자의 동기 및 행위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희생자’의 상태, 즉 불치의 병이라든가 회복이 불가능한 심각한 퇴행상태 같은 부분에 대한 언급은 아예 제외시켰다. 그동안 영국에선 희생자의 상태를 규정할 경우, 이런 상황에 놓인 수많은 환자들을 스스로 ‘가치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하지만, 스타머 총장은 이번 가이드라인으로 안락사 조력자를 처벌하는 법 개정은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현행법률에 따라 영국에선 안락사 조력자의 경우 최고 14년형을 받을 수 있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쪽에선 대부분 새로운 가이드라인 발표를 환영하며 정치권에 법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고든 브라운 총리가 “좀더 전면적인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히는 등 의회 내에선 법 개정엔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오히려 논란은 더 격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엔 <비비시>(BBC) 방송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레이 고슬링이 프로그램에서 수십년전 자신이 연인의 안락사를 도운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