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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나치 추억하는 ‘슬픈 라트비아’

등록 2010-03-17 21:50

‘소련·독일·소련’ 순 잇따라 점령
“스탈린보다 히틀러가 나았다”
반러 감정탓 나치기념행사 열어
16일 발트해에 연한 소국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선 옛소련 해체로 독립한 이래 연례행사가 되어온 라트비아 나치군단 퇴역군인들의 시가행진이 벌어졌다. 21세기에 나치를 기념하는 공개행사에 서방 각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특히 유대인들은 경악한다.

그러나 시가행진에 휠체어를 타고 행진한 퇴역군인 아이바르스 오졸스(85)은 생각이 다르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전쟁에 참가하긴 했지만, 볼셰비키에 맞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나치 군복을 입고 소련군과 싸웠던 경험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전후 전범으로 붙잡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9년 세월을 보냈고, 두 발을 잃었다.

나치 독일은 1943~1944년 소련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14만6천명의 라트비아인을 징집해 ‘바펜 에스에스 라트비아군단’을 편성했고, 오졸스도 소련군과의 전투에 투입됐다. 1943년 3월16일은 군단 소속 2개 라트비아 사단이 소련군의 진격을 물리친 전투 기념일이다. 눈발이 날린 이날 시가행진에는 오졸스를 포함한 80대의 퇴역군인 350여명과 이들을 지지하는 2천여명이 참가했다.

이 연례행사는 라트비아의 불행한 현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라트비아는 나치독일과 소련의 불가침조약에 따라 1940년 소련에 점령됐다가, 41년엔 나치 독일에 점령됐다. 44년 다시 소련에 점령당했지만,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해 2004년에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국의 회원국이 됐다.

1940~41년 소련점령기를 ‘공포의 시기’로 기억하는 라트비아인들은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돼지새끼들이지만, 스탈린이 더 나빴다”고 말한다. 발틱3국 가운데 반러시아 감정이 가장 강한 라트비아에선 이런 생각이 일반적이다.

나치 점령 당시 라트비아 유대인 7만명의 95%가 학살됐고, 일부 라트비아인 부역자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과 주민 40%를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은 행사금지소송을 제기하고 반대시위를 벌이는 등 연례행진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라트비아인들이 자신들을 나치 부역자가 아니라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한, 주변국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례기념행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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