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128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체첸 반군에 의한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당시 러시아텔레비전에 비친 ‘블랙 위도스’로 불리는 체첸 여전사(왼쪽). 검은 차도를 쓰고, 몸에는 폭탄띠를 두르고 있다. 모스크바/AFP 연합뉴스
푸틴 총리 “모스크바 테러 책임자들 섬멸할 것”
체첸반군 지도자 “러시아 전역 공격 확대” 경고
체첸반군 지도자 “러시아 전역 공격 확대” 경고
29일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폭탄테러가 이른바 ‘블랙 위도스’(Black Widows, 검은 미망인)라 불리는 체첸 출신 여성 전사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면서 체첸을 둘러싼 피의 보복 회오리가 예고되고 있다.
시베리아 순시 중 모스크바로 급히 돌아온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30일 현장과 병원을 방문한 뒤 폭탄테러에 책임 있는 자들을 “섬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이날 반테러법 강화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푸틴이 1999년 2차 체첸전을 통해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으로 등장하며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후계로 급부상했던 점을 떠올리면, 최근 러시아에서 일고 있는 반푸틴운동을 잠재울 명분으로 체첸을 포함한 북캅카스(코카서스) 지역에 대한 강공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상자들이 숨지며 전날 테러로 인한 사망자는 39명으로 늘었다.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장은 “현장에서 발견된 두 명의 여성 폭탄테러범은 폭발물인 헥소겐과 금속 파편들을 싸맨 허리띠를 차고 있었다”며 “1차 조사 결과 북캅카스 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테르팍스> 등 러시아 언론들은 이 여성들이 다른 여성 2명 및 남성 1명과 함께 유고자파드나야역에서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탔다고 보도했다.
<가디언> 등 외신들은 이날 테러 형태의 유사성 등을 들어 일제히 블랙 위도스의 테러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들은 전설적인 체첸반군 지도자인 샤밀 바사예프(1965~2006년)가 1999년 조직한 살리힌 순교여단의 여성 단원들인데, 대부분 1992년 체첸 분리주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남편이나 형제를 잃고 전사로 변신했다. 특히 2002년 120여명이 희생당한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건 당시 검은 차도르를 머리에 쓰고 폭탄띠를 몸에 두른 모습이 러시아 방송 화면에 잡히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이들은 이후 2년 동안 잇단 폭탄테러로 러시아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러시아의 <코메르산트> 등은 러시아 당국이 이달 초 북캅카스 예카체보 마을에 대한 군사작전에서 이슬람 게릴라 지도자인 알렉산드르 티호미로프 등이 숨진 데 대한 복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당시 작전에서 숨진 이들의 친인척, 특히 여성들 가운데 사라진 인물들을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밖에 바사예프의 후계자인 도쿠 우마로프는 최근 반군 웹사이트인 ‘캅카스센터닷컴’을 통해 그동안 캅카스 지역에 제한됐던 공격을 러시아 전역으로 확대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4월 체첸에서 대테러전 종식을 공식선언했지만, 체첸과 인근 다게스탄, 인구시를 포함한 북캅카스 지역에선 러시아와 친러세력을 겨냥한 폭탄테러가 끊이질 않았다. 영국 버밍엄대학의 서윈 무어 교수는 “북캅카스 지역의 친러 꼭두각시들을 내세운 강압정치와 인권유린, 그리고 이 지역의 빈곤 상황은 새로운 전사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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