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대에 발포…정권 붕괴가능성 제기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19명이 숨지고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정권붕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7일 키르기스 수도 비슈케크에서 수천명의 시위대가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정부 중앙청사로 행진을 벌이다가 경찰과 충돌했다.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하며 진압하던 경찰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발포해 시위대 19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야당은 약 100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내무장관이 시위대에 맞아 숨지고 부총리가 인질로 붙잡혔다는 미확인 소문도 떠돌고 있다. 경찰 진압차량 등을 탈취한 시위대는 이날 의회와 국영방송국 등 주요 시설도 장악했고 검찰청사는 불탔다. 앞서 6일에는 키르기스 북서부 탈라스시에서 반정부 시위자 약 1만명이 시청에 난입하면서 이번 사태가 시작됐다. 야당은 바키예프 대통령과 협상중이라고 밝히고, 그의 퇴진만이 유일한 사태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7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번 시위는 가파른 물가상승과 바키예프 대통령의 부패와 권위적 통치 등이 원인이 됐다. 1인당 국내총생산 2180달러(약 240만원)의 빈곤국가 키르기스는 경제난에 시달리던 가운데 1월부터 전기요금이 2배 인상되는 등 공공요금이 치솟으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시위대는 “썩어빠진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야당 지도자 10여명을 체포하면서 사태 진압에 나섰지만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다니야르 유세노프 총리는 키르기스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2005년 전임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의 부패와 정실인사에 맞선 ‘튤립(레몬) 혁명’을 이끌어, 아카예프 대통령이 러시아로 달아나면서 14년 장기집권을 끝내고 국민들의 기대속에 대통령에 선출됐다. 하지만 5년 만에 족벌정치로 부패를 저지르고 야당을 탄압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으며 궁지에 내몰렸다. 2007년에도 수도 비슈케크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러시아와 미국 등은 무력충돌 자제를 요청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인접한 요충지 키르기스의 혼란이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은 키르기스에 공군기지를 설치해 아프간전에 활용하고 있다. 인구 535만명의 키르기스는 1991년 소련 붕괴 뒤 독립했으며 이슬람 인구가 75%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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