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유럽

‘카틴 숲 학살’에 고개숙인 푸틴

등록 2010-04-08 19:58수정 2010-04-08 19:59

70년전 폴란드군 2만2천명 총살…투스크 총리 초청 첫 공동추모
7일 오전 러시아 서부 스몰렌스크 인근의 카틴 숲.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꼭 70년전 이 곳에서 총살당한 수많은 넋을 위로하며 헌화한 뒤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푸틴 총리가 투스크 총리를 ‘카틴 숲 학살’ 희생자 추모식에 공식 초청한 것이다. 러시아 최고위급 정치인이 폴란드 국가 지도자를 이 곳에 초청해 공동추모 행사를 연 것은 처음이다.

‘카틴 숲 학살’이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0년 봄, 당시 소련의 비밀경찰(KGB의 전신)이 이곳에 주둔하던 폴란드 장교를 포함해 군인 2만2000여명을 학살해 암매장한 사건이다. 당시 폴란드 군은 나치에 저항하기 위해 집결해 있었으나, 독일과 불가침 밀약(1939년)을 맺은 스탈린이 이들에 대한 학살을 지시했다. 이후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에 분할점령된다.

푸틴은 이날 “우리는 과거 전체주의 정권이 저지른 잔학행위에 대해 분명한 정치적, 법적, 도덕적 평가를 내려왔다”며 “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양국 국민은 과거의 기억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이 7일 전했다. 푸틴은 그러나 “수십년간 거짓으로 가려진 카틴 학살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지금 러시아 국민을 비난하는 것 또한 거짓과 조작”이라며 학살의 책임 소재와 추궁에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투스크 총리는 이번 공동 추모행사가 “매우 중요한, 상징적 측면”이 있다며 “진실의 말들이 양국 국민을 화해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 방송은 이날 “푸틴 총리가 투스크 총리와 함께 카틴 숲 추모식에 참석한 것은 러시아-폴란드 관계의 이정표이자 그 자체로 역사적 사건”이라고 논평했다. 미 국무부는 “양국 총리의” 공동추모는 훨씬 더 나아진 현재와 더 밝고 평화로운 미래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폴란드가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 방어(MD) 계획에 적극 참여하는 등 러시아와 접경한 동유럽 국가들이 뚜렷한 친서방 노선을 걷는 현실에서, 러시아가 이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카틴 숲에서 대량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은 1943년 러시아를 침공한 독일군이 엄청난 유해더미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소련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뒤에도 이 학살이 독일 나치의 소행이라고 주장해오다,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뒤에야 고르바초프 당시 서기장이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관련자료 공개, 전쟁범죄 규정 여부, 국가보상 등 법적 분쟁은 여전히 양국간 분쟁의 불씨로 남아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