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반정부 시위대가 8일 수도 비슈케크에 있는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의 집무실을 점거한 뒤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야당은 이날 축출된 바키예프 대통령을 대체할 과도정부를 출범시켰다.비슈케크/AP 연합뉴스
유혈충돌 속 과도정부 수립
미군기지 반감 때문…지정학적 중요성 다시 부각
푸틴 “관련없다” 즉각 부인 불구 ‘공수부대’ 파견
* 키르기스 마나스공항 : 아프간전 수행 미군 병참기지
미군기지 반감 때문…지정학적 중요성 다시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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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기스 마나스공항 : 아프간전 수행 미군 병참기지
중앙아시아의 빈국인 키르기스스탄에서 발생한 ‘제2의 튤립혁명’으로 미군과 나토군의 주요 보급로 중의 하나인 마나스 공항이 일시 폐쇄되면서 키르기스스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상하고 있다. 과도정부는 8일 수도 비슈케크에 인접한 마나스공항 미군기지에 대해 일시 폐쇄명령을 내렸다. 폐쇄조처를 내린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벌일 경우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지만, 자국 내 미군기지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폐쇄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은 옛 소련 구성국들에 대한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흐름 속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오렌지혁명’으로 친서방의 길을 걷던 우크라이나가 친러시아 쪽으로 돌아서고 ‘장미혁명’의 그루지야도 러시아와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키르기스 미·러 공군기지
키르기스의 지정학적 위치는 독특하다. 러시아와 미국이 모두 공군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러시아에 지정학적 최우선 지역은 아니지만,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중국과 인접해 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할 수 있고,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밀집 지역을 감싸안고 있을 뿐 아니라 카자흐의 일부라고 할 만큼 카자흐스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기지를 포함해 4개의 공군 기지를 유지하고 있고, 우즈베키스탄에 가까운 오슈에 또다른 기지를 건설하는 군사 협력 관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은 8일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키르기스에 특사를 보내기로 했다. 미군이 임대한 마나스 공군기지는 아프간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이 지역에서 대안을 찾기 힘든 중요한 병참기지이다. 2008년 아프간전과 관련해 3300회의 공중 급유 활동을 했고, 연인원 17만명의 이동과 5000t의 물자 수송이 이뤄졌다. 이곳이 막힐 경우 확전을 앞둔 미국의 아프간전 수행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7일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의 정부청사 앞에서 경찰과 대치한 시위대들이 전복된 차량에 불을 붙이고 있다. 비슈케크/AP 연합뉴스
이번에 축출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은 마나스 기지 폐쇄 위협을 통해 연 1700만달러에서 6000만달러로 임대료를 올리는 데 미-러의 경쟁관계를 이용하기도 했다. 키르기스에 대해 해마다 20억달러의 경제지원을 하고 수력발전소 건설 등을 약속한 러시아는 키르기스의 이런 이중적 태도에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이번 사태는 불시에 닥친 일로 러시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러시아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푸틴 총리가 최근 이번 사태에 앞서 키르기스의 친러 야당 아크슘카르당의 테미르 사리예프를 면담하는 등 키르기스에 대한 영향력 확대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러시아는 150여명의 공수부대도 키르기스 내 자국군이 주둔 중인 칸트 공군기지에 파견했다. 사태 직후엔 “바키예프가 전임자의 실수를 되풀이했다”며 시위에 지지입장을 밝히고, 과도정부 수반인 로자 오툰바예바에게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오툰바예바가 일단 과도 수반이 됐지만, 경쟁관계인 야당들의 단일 대오가 흐트러질 경우 아크슘카르당이 주도하는 추가적인 친러혁명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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