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소련 비밀경찰이 전쟁포로등 2만여명 폴란드인 학살
대독일 전쟁 상황 감안 루즈벨트 사실 확인하고도 ‘은폐 결정’
대독일 전쟁 상황 감안 루즈벨트 사실 확인하고도 ‘은폐 결정’
‘카틴 숲 학살사건’이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당시 러시아 비밀경찰(NKVD)이 폴란드인 전쟁포로와 시민들을 대량학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당시 소련 비밀경찰은 폴란드군 장교, 지식인, 예술가, 노동자, 성직자 등 수천명을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
현재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는 학살 인원은 2만2천명이다. 학살자들은 키틴 숲과 칼리닌, 카하라키브 교도소 등에서 처형됐다. 이 가운데 약 8천명 정도는 1939년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포로로 잡힌 병사들이다. 나머지 당시 처형된 폴란드인들은 “첩보원, 경찰관, 파괴활동가, 공장주, 법률가, 종교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학살사건은 당시 소련과 교전중이던 독일군이 1943년 수천여명에 이르는 폴란드인들의 사체가 카틴 숲 근처에 매장된 것을 밝혀내면서 알려졌다. 독일은 당시 점령중이던 폴란드에서 이 학살 사건을 반소련 선전에 활용했다.
1944년 미국도 카틴 숲 학살사건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조지 알 대위를 밀사로서 발칸반도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 대위는 이 학살사건이 소련이 저지른 것으로 결론을 냈으나,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이 조사결론을 공포하지 않았다. 알 대위는 자신의 조사를 공표할 수 있게 허가해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으나,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것을 금지했다. 역사가들은 이에 대해 당시 미국이 소련과 함께 대 독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상황이 프랭클린 대통령의 ‘은폐 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차대전 후 폴란드가 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였을 때, 소련은 이 학살사건이 독일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1989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베웬사 정부는 이 학살이 소련에 의해 저질러진 것임을 분명히 했다. 1990년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이 이 학살에 대한 소련의 책임을 최초로 인정했고, 그 1년 뒤에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이 학살을 인정하는 공식문건을 공개했다. 학살현장 주변에는 몇 개의 폴란드인 공동묘지가 있지만, 상당수의 폴란드군 포로 무덤은 밝혀지지 않았거나,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폴란드에서는 이 학살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가 2007년에 제작돼 이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태였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2차대전 후 폴란드가 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였을 때, 소련은 이 학살사건이 독일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1989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베웬사 정부는 이 학살이 소련에 의해 저질러진 것임을 분명히 했다. 1990년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이 이 학살에 대한 소련의 책임을 최초로 인정했고, 그 1년 뒤에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이 학살을 인정하는 공식문건을 공개했다. 학살현장 주변에는 몇 개의 폴란드인 공동묘지가 있지만, 상당수의 폴란드군 포로 무덤은 밝혀지지 않았거나,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폴란드에서는 이 학살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가 2007년에 제작돼 이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태였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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