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요구했을 가능성 제기
조종사 ‘임무완수’ 집착 추정도
조종사 ‘임무완수’ 집착 추정도
왜 조종사는 무리한 착륙을 시도했을까? 96명이 목숨을 잃은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 추락사고 원인을 두고서 계속되는 의문이다. 조종사는 관제탑의 회항 지시를 어기고 4차례나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 변을 당했다. 러시아와 폴란드 조사당국은 12일 사고 당시 조종사에게 기상악화 경고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항공기 이상은 없었다며 무리한 착륙 시도를 사고 원인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우선 숨진 카친스키 대통령이 조종사에게 무리한 착륙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카친스키는 비슷한 전력이 있다. 그는 2008년 8월 그루지야 방문 당시 조종사에게 상황이 위험한데도 착륙을 강행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논란 끝에 조종사는 착륙을 거부하고 인근 아제르바이잔으로 회항했다. 당시 카친스키는 “조종사가 되려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귀국하면 이 문제를 따지겠다”며 발끈했다고 폴란드 신문은 보도했다. 조종사는 귀국 뒤 징계 대신 오히려 메달을 받았지만 의기소침해졌다고 <뉴욕 타임스>는 폴란드 국방장관의 말을 인용했다.
이 때문에 카친스키가 이번에도 무리한 착륙을 요구했을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카친스키는 카틴숲 학살 추모행사에 러시아의 초청을 받지 못하자 별도의 추모행사를 치르기 위해 가던 중이었다. 2008년에도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그루지야에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그루지야로 향하던 카친스키는 당시 러시아군의 회항 지시를 거부하고 조종사에게 그루지야에 착륙할 것을 요구했다.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고 전용기 조종사가 전용기에 탑승한 대통령들의 의견을 자주 구했다는 것이다. 바웬사는 조종사가 “의문이 생기면 다가와서 의견을 물었고, 그 결정에 따라 다음 조처를 취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조종사가 지나치게 ‘임무 완수’에 집착하다가 재앙을 초래했다는 추정도 나온다. 대통령 일행이 행사에 늦지않아야 된다는 ‘압력’을 받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폴란드와 러시아의 조사당국은 현재 사건의 실마리를 쥔 블랙박스를 수거했지만 자세한 기록 등은 발표하지 않고 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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