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유럽

변화 목마른 영국 민심 ‘양당제’ 허물까

등록 2010-05-02 21:54수정 2010-05-02 21:55

영국 총선을 닷새 앞둔 1일(현지시각), 기성 정당 정치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런던의 의사당 앞에서 상징적으로 빅벤을 처형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기존 양당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36년만에 첫 연립정부 구성이 예상된다.   런던/AP 연합뉴스
영국 총선을 닷새 앞둔 1일(현지시각), 기성 정당 정치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런던의 의사당 앞에서 상징적으로 빅벤을 처형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기존 양당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36년만에 첫 연립정부 구성이 예상된다. 런던/AP 연합뉴스
자민당 ‘열풍’…과반정당 없어 연정 불가피
보수·노동당 1위 관측도…언론 “예측 불가”




[영국 총선 3일 앞으로] 현지 분위기

오는 6일(현지시각) 영국 총선에선 1974년 이후 처음으로 절대 다수당이 없어 연립정부가 구성되는 헝(hung) 의회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80년대 보수당 장기집권을 지나 90년대 말 젊은 토니 블레어와 노동당을 선택했던 영국인들에게 양당은 이제 ‘기성 정치’라는 한묶음으로 인식되고 있다. 노동당의 우경화가 배경 가운데 하나지만, 서구 의회정치의 상징이던 영국에서 양당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기존 좌·우 또는 진보·보수라는 정치 구도의 유효성에도 의문을 던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가디언>은 이번 총선이 “최근 수십년 가운데 가장 예측 불가능한 선거”라며 “분명한 점은 유권자들이 변화에 목말랐다는 것”이라고 2일 지적했다.

영국 런던 북서부에 인접한 워트포드(Watford)는 지난 1세기 동안 집권당이 바뀌는 중요한 선거 때마다 집권당을 선택해 선거의 향방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최근 노동-보수-자유민주당 3당 간 최대 격전지가 된 이곳에서 1일(현지시각) 만난 유권자들은 대부분 13년간 집권한 노동당에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평생 노동당을 지지했다는 거민스 마커(52)는 “고든 브라운이 이끄는 노동당이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며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직장이 불안하다. 지금 영국인들은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인쇄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지난해 2월 실직한 그는 “‘헝 의회’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자영업자인 이스라 샤(42)는 경기침체와 함께 이라크전 참전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서 우리 젊은이가 250명 넘게 죽었다”며 “왜 멀리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에 우리가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느냐”고 말했다. 여성 중소기업 경영자인 소어스 질(43)은 지난 선거 때는 노동당을 찍었지만 이번엔 보수당과 자민당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노동당이 돈을 너무 헤프게 쓰고 나서 세금을 인상한다”며 증세 정책에 반감을 나타냈다.


영국 총선 마지막 티브이 토론이 열렸던 지난 29일(현지시각) 케임브리지 시내의 한 술집에서 유권자들이 3당 지도자들의 토론을 유심히 듣고 있다. 케임브리지/박현 기자
영국 총선 마지막 티브이 토론이 열렸던 지난 29일(현지시각) 케임브리지 시내의 한 술집에서 유권자들이 3당 지도자들의 토론을 유심히 듣고 있다. 케임브리지/박현 기자
그러나 화살은 노동당으로만 향한 게 아니다. 지난해 하원의장과 주요 장관, 의원 수십명의 사퇴를 몰고온 ‘의원 세비 부당청구 스캔들’은 노동당과 보수당의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 자민당의 닉 클레그 ‘돌풍’의 근본적 배경이다. 택시 운전수 머니 고어(27)는 ‘누구를 찍을 것이냐’는 질문에 처음엔 “아무도 안 찍을 것이다. 정치인은 모두 ‘크룩’(Crook, 사기꾼)”이라고 말했다. 거듭되는 질문에 그는 조심스럽게 “닉 클레그와 같은 새로운 사람이 나라를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티브이 토론이 열렸던 지난달 29일 케임브리지 시내의 한 술집. 열띤 총선 열기 탓인지 손님들이 모두 술잔을 놓고 토론을 지켜보고 있었다. 케임브리지대 2학년생 아나 스티븐슨(21)은 세 정당을 나름의 잣대로 분석했다. 그는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 총리 때부터 우경화했고, 보수당은 복지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양당 간의 정책 차이가 별로 없어졌다”고 말했다. 자민당에 대해서는 “2005년 선거에서 이미 이라크전에 반대했고, 막대한 돈이 드는 ‘트라이던드’ 핵 잠수함 사업 폐기, 비례대표제 도입 등 진보적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민당을 찍겠지만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며 “차악의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40대 중반의 직장인 데이비드 비거는 “보수당과 노동당 지도자들이 자민당의 정책에 대해 준비를 하고 나온 이번 토론에서는 클레그가 잘 하지 못한 것 같다”며 “지금은 재정을 탄탄하게 해야 할 때인 만큼 이 부분에 강점을 가진 보수당이 이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동유럽 이민자들이 몰려들며 이민 문제가 경제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는 것도, 상대적으로 강한 규제책을 내건 보수당에 유리한 측면이다.

30대의 대학강사 오웬 밀러의 선택은 젊은 지식인의 고민을 엿보게 했다. “노동당은 우경화된 정책으로 실망을 안겨줬다. 보수당은 대처리즘(신자유주의)의 그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환경문제를 중시하는 녹색당을 찍을 생각이다.” 영국 유권자들은 ‘안정적인’ 양당체제에서 벗어나 수십년만에 새로운 정치실험을 기꺼이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워트포드 케임브리지/박현 기자hyu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