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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유권자는 ‘변화’를 선택했다

등록 2010-05-07 20:43

노동당 우경화·경기침체 실망




박현 기자의 영국총선 관전기

6일(현지시각) 투표소에 들어서는 영국 유권자들의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가장 극적인 선거’라는 현지 언론들의 평가에서 보듯, 예측 불가능한 선거 결과 탓에 잔뜩 긴장해 있는 듯했다. 개표 결과는 요동치는 표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영국인들은 36년 만에 어느 정당도 단독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한 ‘헝 의회’(Hung parliament)라는 새로운 정치지형을 선택했다. 영국인들은 13년 집권의 노동당에 대해 명백하게 실망감을 드러냈다. 보수당에 대해서는 제1당으로 선택했지만 단독 집권의 기회를 주지는 않았다. 자유민주당에 대해서는 정국 불안과 집권 경험 부족을 우려했다. 한마디로 변화를 선택했으나 어느 한 당의 단독 집권은 바라지 않았다.

민심의 핵심은 1997년 ‘급진적 중도’를 표방하며 변신한 ‘뉴 노동당’에 대한 냉엄한 심판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당은 복지 지출과 교육·의료 부문에 대한 정부지원 확대, 최저임금제 도입 등 나름대로 진보적 정책들을 폈지만 이라크 전쟁에 깊이 관여하면서 민심을 잃었다. 또 빈곤층 우대 세제를 폈음에도 빈부 격차의 확대를 막지는 못했다.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금융 중심의 경제 운영은 노동당의 우경화에 한몫했다. 진 시어턴 웨스트민스터대 교수는 “과거 대처 정부와 다르게 공공서비스를 확대했지만 9.11 테러사건 이후 이라크 전쟁에 주도적으로 참전하고 경기침체로 중산층의 지갑이 얇아진 게 민심이 돌아선 결정적 이유”라고 말했다.

‘진보적 보수’라는 다소 모순적인 이념을 기치로 내세운 보수당은 제1당으로 올라섰지만,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영국인들이 보수당을 제1당으로 선택한 것은 보수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노동당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다. 43살의 젊은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은 사회정책과 교육, 의료 등 진보적 의제들을 껴안는 ‘온정적 보수주의’로 유권자들의 심리를 파고들었지만 작은 정부와 지나친 자유시장주의라는 강고한 보수 이념은 지지층을 늘리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 한 40대 유권자는 “상당수 40대 이상 영국인들의 뇌리에는 아직도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편 대처 정부에 대한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영국인들은 지난달 15일 첫 텔레비전 토론 이후 자민당의 닉 클레그에 열광했지만, 결국에는 아직 시험받지 못한 그의 능력에 의문부호를 던졌다.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고 중산층을 대변하는 자민당은 의원 세비 부당유용 스캔들에 휘말린 보수-노동당과는 다르게 깨끗한 정당으로 각인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소선거구제라는 현행 선거제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유권자들의 심리를 뒤흔든 기저에는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영국의 역대 선거에서 ‘헝 의회’가 나타난 1929년과 1974년은 각각 대공황과 석유 위기가 발생한 시기였다. 경제위기 직후 실시된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국내총생산(GDP)의 11.6%에 이르는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영국 경제를 회생시킬 정당을 찾는 데 합일점을 찾지 못했다.


이번 선거는 영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중도 좌파로 분류되는 노동-자민 두 당의 득표율을 합하면 과반이 넘는 52.1%에 이른다. 유권자 지지율 측면에서 드러난 표심은 그래서 노동-자민당의 연정을 바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두 당의 연정은 정치·경제 개혁이라는 당면한 과제를 푸는 데 노동당과 보수당 단독 집권 때보다 더 현명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박현 기자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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