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채무보증 대립에 무산 위기 독 ‘국가차원’ 선호하다 부담커져
‘7500억유로’ 금융안정책 어떻게 나왔나 지난 10일 새벽 2시45분, 유럽연합(EU) 재무장관 회담 결과를 발표하는 올리 렌 유럽연합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과 엘레나 살가도 스페인 재무장관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괴물’, ‘매머드’로 불리는 7500억유로(약 1082조원) 규모의 금융시장 안정책을 도출한 11시간짜리 마라톤회담의 피로감이 그대로 묻어났다. 야체크 로스토프스키 폴란드 재무장관은 회담 직후 이빨 응급치료를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27개국 대표들이 모인 회담장 안팎에선 첨예한 갈등과 논쟁, 극적 반전이 잇달아 한때 무산위기까지 몰렸지만 ‘예상 못한 아이디어’가 막판 대타협을 낳았다고 전했다. 9일 오후 재무장관들은 시장안정책의 규모와 방식을 두고 초반부터 설전에 들어갔다. 독일은 그리스 지원처럼 국가간 차관 제공을 제안했다. 반면 곳간이 넉넉하지 못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채무 보증 방식을 쓰자고 요구했다. 프랑스도 유럽연합 집행위에 힘을 실어주자는 쪽이었지만, 독일과 영국은 유럽연합 집행위에 ‘백지수표를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교착 상태는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한 프랑스 관리는 본국에 “협상이 파열로 치닫고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비관적 분위기가 회담장을 짓누르자, 악셀 베버 독일연방은행 총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유럽 금융 안전 기구’라는 한시기구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각국은 보증을 제공하자는 일종의 타협책이었다. 재무장관들은 일본 도쿄 증시가 개장하고 15분 뒤에야 이 안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전문가들은 결론이 타협적 성격을 띠지만 ‘프랑스의 판정승’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프랑스는 애초 유럽연합을 통한 문제 해결과 범유럽적 금융시장 통제를 강하게 주장해왔다. 독일은 국가 대 국가 방식을 선호했으며, 구제금융의 규모가 커지자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독일은 지난주 그리스에 22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한 데 이어, 이번 합의 결과로 1200억유로를 추가 부담해야 할 처지다. 그리스 지원을 꺼리다 구제금융 규모를 몇 배로 불렸다는 책임론도 독일의 입지를 좁혔다. 프랑스 출신의 장클로드 트리셰 총재가 이끄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애초 입장을 번복하고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밝힌 것도,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기본목표에 충실할 것을 주장해 온 독일에게는 씁쓸한 대목이다. 독일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통화동맹의 모든 원칙이 희생됐다”고 개탄했다. 유럽개혁연구소의 찰스 그랜트 소장은 이런 갈등을 빗대서 “독일-프랑스 관계가 이번 사태의 큰 패배자”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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