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시간 벌었을 뿐”
* 메르켈 : 독일 총리
* 메르켈 : 독일 총리
유럽 재정위기 타개를 위한 7500억유로(약 1060조원) 규모의 대책에 대한 불신감으로 전세계 시장이 다시 한번 요동친 가운데, 유럽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이 대책이 ‘시간벌기용’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근본적 처방에 해당하는 개혁안들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6일 독일노동총동맹 대표자대회 연설에서 “우리는 유로존 국가들의 경쟁력과 재정적자 격차를 정리하기 위한 시간을 번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지난주 여러차례 유럽 국가들의 재정 건전화와 금융시장 통제 강화를 요구했던 메르켈 총리는 파생금융상품과 단기 금융거래 규제장치를 신속히 만들자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촉구했다고 밝혔다. 위르겐 슈타르크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도 이날치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인터뷰에서 “우리는 시간을 벌었을 뿐이며, 그 이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좀더 강력한 어조를 사용했다. 그는 17일 발간된 독일 주간 <슈피겔> 인터뷰에서 “시장이 더는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때와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며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제재를 피하려면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독일 정부가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자국 수준으로 재정을 건전화하자는 방안을 오는 21일 유럽연합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독일은 2016년까지 현재 3%대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을 0.35% 이하로 낮추고, 각 주정부는 2021년부터는 적자 재정을 꾸리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지난해 통과시켰다.
유럽 경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들의 잇따른 경고는 지난 10일 나온 대책이 금융시장 불안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하고, 그 여파로 유로화 가치가 4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진 상황에서 나왔다. 이날 일본 도쿄시장에서 1유로는 지난주 마감 때보다 0.7% 추락한 1.2235달러까지 떨어졌다.
불안이 가시지 않으면서 신용경색 초기 증상들도 나타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그리스에 투자한 유럽 금융기관들을 미덥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에 따라 은행간 조달금리가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투자자들이 유럽 금융기관에 넣어둔 5000억달러(약 577조원) 규모의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가 유럽 시장을 버리기 시작하면 충격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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