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문서 일부 공개
영국 정보기관들이 테러 용의자로 찍힌 자국민들에 대한 가혹행위를 묵인하거나 직접 가담했던 사실이 문서로 확인됐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자국민들에 대한 불법 감금과 고문의 자세한 실상을 보여주는 비밀문서들의 내용이 일부 공개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4일 보도했다.
앞서 보수연정을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노동당 집권 시절 자국 정보기관의 테러 용의자 고문 의혹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기구 구성을 지난달 말 지시했으며, 전직 판사가 이끄는 조사단이 공식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그동안 기밀로 분류됐다가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에는 엠아이 파이브(MI5)와 엠아이 식스(MI6) 같은 영국의 국내외 정보기관들의 대외비 보고서들도 포함돼 있다.
MI5 요원들이 작성한 일련의 문건들을 보면 영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내 미군 기지로 끌려가 조사를 받은 자국민들의 가혹행위 호소를 묵살하거나, 심지어 고문받는 모습을 지켜본 것으로 드러났다. 또 MI6가 작성한 ‘구금자와 구금작전’이란 제목의 매뉴얼은 정보요원들에게 “특히 민감한 사안의 경우, 테러 용의자 구금 작전에 직접 개입하기 앞서, 그를 죽이는 것보다 가둬놓는 것이 작전의 목적인지를 자세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사실상 ‘007 살인면허’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이 밖에도 2002년 초 영국 외무부가 아프간 미군기지에 구금된 자국민들을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로 이송하는 방안을 선호했으며, 잭 스트로 당시 외무장관이 영국 국적 테러 용의자들의 자국 인도 시점을 늦췄다는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캐머런 정부는 변호사 60명을 선임해 무려 50만건에 이르는 관련자료들을 조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900여건이 공개됐다. 캐머런 총리는 그러나 “조사위에 제출된 어떤 자료들도 전면 공개되지는 않을 것이며 정보요원들에 대한 공개 추궁도 없을 것”이라고 밝혀, 사태가 ‘인권’ 문제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확대되는 것은 경계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