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 매닝엄-불러 전 영국 국내정보국(MI5) 국장
이크라전 당시 정보국 수장…청문회 고백 ‘파장’
“영국 정보없이 참전…테러위협 되레 증대시켜”
“영국 정보없이 참전…테러위협 되레 증대시켜”
이라크가 9·11테러와 관련됐다는 증거가 없고, 이라크 전쟁이 테러 위협을 더 악화시켰다고 엘리자 매닝엄-불러(사진) 전 영국 국내정보국(MI5) 국장이 20일 밝혔다. 이라크전 당시 영국 핵심 정보기관 수장의 고백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2002~2007년 영국 국내정보를 총지휘했던 매닝엄-불러는 이날 이라크전쟁 진상조사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9·11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이런 내 생각을 바꿀 만한 어떤 것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신뢰할 만한 정보도 없었고 단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판단이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이 입맛에 맞는 정보를 찾을 수 없자,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국방부 안에 별도의 정보부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현 상원의원인 매닝엄-불러는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이라크전 참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이라크가 대량파괴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청했지만 거부했다고 증언했다.
매닝엄-불러는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이 이슬람 과격세력을 자극해 테러 위협을 “상당히” 증대시켰다고 말했다. 이라크전이 오히려 알카에다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에게 이라크에서 성전을 치를 수 있도록 만들었고, 빈라덴은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이라크로 침투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라크전이 영국 등 서방에서의 이른바 ‘자생적 테러’의 토양이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매닝엄-불러는 “우리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더해 이라크에 개입함으로써 이것을 이슬람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젊은 세대 일부를 과격화시켰다”고 말했다. 52명이 숨진 2005년 7월 영국 지하철 자살테러범들은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을 비난하는 동영상을 남긴 바 있다. 매닝엄-불러는 70~80명의 영국 시민권자가 이라크로 건너가 테러조직에 참가했다고 이날 처음으로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매닝엄-불러 등 이라크 침략에 회의적이었던 관리들이 이라크전이 오히려 테러 위협을 높일 줄 알면서도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해 참전을 막지 못했다며, 이들의 뒤늦은 고백을 비판했다. 이라크전쟁 진상조사위원회는 전쟁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위협을 과장했다는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구성돼 블레어 전 총리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조사를 해왔으며, 올해 말까지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사진 AP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