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등 유랑자 범죄 빌미 정치 희생양 삼아
무차별적 강제철거…국제사회 이슈로 떠올라
2009년 조사 집시 절반이상 “인종차별 겪었다”
무차별적 강제철거…국제사회 이슈로 떠올라
2009년 조사 집시 절반이상 “인종차별 겪었다”
‘천년 유랑’ 비극은 현재진행형
집시는 프랑스에서 법률적 용어로 유랑민(gens du voyage) 또는 정착 노동자로 불린다. 현재 프랑스에는 30만~40만명의 유랑민이 있고, 95%는 프랑스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 집시는 1만5000여명으로 추산된다. 1990년 베송법에 따르면, 주민 5000명이 넘는 프랑스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유랑자들에게 거주지를 제공하고 전기와 수도 등 기본적인 거주 지원을 하게 돼 있지만, 이를 준수하는 곳은 40%에 불과해 불법캠프가 양산되고 있다.
프랑스뿐 아니라 거의 모든 서유럽 국가들에서 집시 추방은 공공연히 이뤄진다. 이탈리아는 지난 2월 14살 여자 어린이가 동유럽 이민자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로마 인근의 불법이민자촌을 강제철거했다. 대부분 거주자가 집시다. 스웨덴도 올봄 50명의 집시를 추방했고, 덴마크에서도 집시 추방이 진행중이다. 서유럽인들은 공원과 공터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구걸을 하는 집시들을 ‘지저분한 골칫거리’로 보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해 유럽의 일부 우파정부들은 국정실패에 대한 관심을 돌리는 데에 집시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
프랑스 우파 정부의 정책이 대표적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7월 중순 프랑스 중부 생테냥에서 집시 1명이 경찰 검문을 피해 도망치다가 사살된 직후 유랑자들이 경찰서를 습격하고 방화한 사건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각종 추문으로 2012년 재선에 위기를 느낀 사르코지가 2007년 당선에 힘이 됐던 ‘제로 톨레랑스’를 다시 부르짖으며 반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집시 추방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에만 1만1000여명을 출국시켰고, 올 들어서도 지난달 말 현재 8313명을 추방했다. 90%가 루마니아 출신이고 나머지는 불가리아 출신이다. 그러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집시 문제를 이용한다는 비판이 최근 커지면서, 이 문제는 유럽연합 등 전체 국제사회의 이슈가 됐다.
2009년 집시 차별에 대한 한 조사에서 응답한 집시들의 절반 이상은 인종차별을 경험했고, 20%는 인종차별적 범죄의 대상이 되었다고 답했다. 2005년 유니세프는 불가리아 거주 집시의 85%, 루마니아 집시의 88%, 헝가리 집시의 91%가 빈곤선 이하의 최하층민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했다.
프랑스 정부는 내년 3월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들의 국경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솅겐조약 가입을 희망하는 루마니아 정부에 자국의 집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고 실업률이 8.5%인 루마니아로 돌아간 집시들이, 없던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추방된 집시들의 3분의 2가 1년 안에 다시 추방된 곳으로 돌아가는 이유다. 집시 문제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연합 차원에서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는 점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유럽 각국의 집시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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